[취재수첩] '과거제' 폐지 검토하는 농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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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규 금융부 기자 black0419@hankyung.com
농협이 지난 20년 가까이 유지해온 과장(4급) ‘승진고시’ 폐지를 추진 중이다. 농협에선 이 승진고시를 통과해야 과장 승진이 가능하다. 직원들이 ‘과거시험’으로 부르는 이유다. 금융계에선 승진고시 폐지에 대해 긍정적이다. 필기고사 형태의 승진고시가 성과주의 문화의 확산을 가로 막고 있다는 평가가 많기 때문이다.
농협 측은 노사 공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승진고시 폐지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한 후 공청회 등을 거쳐 폐지 여부를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승진고시는 군대와 4년제 대학을 마친 5급 직원이 입사 3년 후부터 치를 수 있는 시험이다. 농협은 1990년대 중반부터 4급 승진고시를 임용고시와 자격고시로 이원화해 시행해 왔다.
엄격한 평가를 통해 중간 간부를 선발하자는 취지지만 농협 안팎에서는 승진고시가 조직의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많았다. 업무 성과와 상관 없이 필기시험만 잘 보면 바로 승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입사 직후부터 수년간 승진고시에만 매진하는 직원들이 많아지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농협 관계자는 “근무시간에 시험 교재를 보거나 시험을 앞두고 아예 고시원에 들어가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업무실적이 부진한 젊은 5급 직원이 시험에 합격해 바로 과장을 다는 반면, 현장에서 좋은 성과를 올리고도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승진에서 누락되는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이처럼 문제가 적지 않은 승진고시를 없애려는 농협의 시도는 환영할 만하다. 경쟁 금융회사들보다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단순 시험성적이 아닌 실적 위주의 인사 평가가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진고시 폐지소식에 대한 젊은 농협 직원들의 반응은 의외로 냉소적이다. 그렇지 않아도 연공서열 문화가 뿌리 깊은 농협에서 승진고시가 없어지면 그나마 남아 있던 실력파 발탁 기회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 때문이다. 실제로 농협에선 승진고시를 제외할 경우 해당 직급에서의 근속 연수가 승진의 유일한 잣대다. 가만히 앉아 시간만 지나면 승진하는 구조다. 근속 연수가 1년이라도 많은 고참이 승진 못하면 후배에게도 기회가 없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승진고시 폐지가 ‘개악’이 되지 않으려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선진적인 인사기준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 승진이 회사생활의 목표는 아니지만 승진마저 봉쇄될 경우 인재들의 이탈을 막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승진고시 폐지라는 결단이 ‘거대 공룡조직’이라는 일각의 비판적인 시각을 불식시키고 농협의 진일보를 이끄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일규 금융부 기자 black0419@hankyung.com
농협 측은 노사 공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승진고시 폐지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한 후 공청회 등을 거쳐 폐지 여부를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승진고시는 군대와 4년제 대학을 마친 5급 직원이 입사 3년 후부터 치를 수 있는 시험이다. 농협은 1990년대 중반부터 4급 승진고시를 임용고시와 자격고시로 이원화해 시행해 왔다.
엄격한 평가를 통해 중간 간부를 선발하자는 취지지만 농협 안팎에서는 승진고시가 조직의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많았다. 업무 성과와 상관 없이 필기시험만 잘 보면 바로 승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입사 직후부터 수년간 승진고시에만 매진하는 직원들이 많아지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농협 관계자는 “근무시간에 시험 교재를 보거나 시험을 앞두고 아예 고시원에 들어가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업무실적이 부진한 젊은 5급 직원이 시험에 합격해 바로 과장을 다는 반면, 현장에서 좋은 성과를 올리고도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승진에서 누락되는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이처럼 문제가 적지 않은 승진고시를 없애려는 농협의 시도는 환영할 만하다. 경쟁 금융회사들보다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단순 시험성적이 아닌 실적 위주의 인사 평가가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진고시 폐지소식에 대한 젊은 농협 직원들의 반응은 의외로 냉소적이다. 그렇지 않아도 연공서열 문화가 뿌리 깊은 농협에서 승진고시가 없어지면 그나마 남아 있던 실력파 발탁 기회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 때문이다. 실제로 농협에선 승진고시를 제외할 경우 해당 직급에서의 근속 연수가 승진의 유일한 잣대다. 가만히 앉아 시간만 지나면 승진하는 구조다. 근속 연수가 1년이라도 많은 고참이 승진 못하면 후배에게도 기회가 없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승진고시 폐지가 ‘개악’이 되지 않으려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선진적인 인사기준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 승진이 회사생활의 목표는 아니지만 승진마저 봉쇄될 경우 인재들의 이탈을 막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승진고시 폐지라는 결단이 ‘거대 공룡조직’이라는 일각의 비판적인 시각을 불식시키고 농협의 진일보를 이끄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일규 금융부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