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에 관심을 갖고 명산에 오를 때면 마음 한편으로 위대한 지도자를 배출할 명당이 자신의 눈에 띄기를 희망할 것이다. 과욕(過慾)은 금물이다.

풍수 격언의 1장 1절은 ‘명산에는 명당이 없다’는 것이다. 산세가 웅장하고 기암괴석이 천태만상의 조화를 부린 명산에선 명당을 얻겠다는 생각은 애당초 버려두고 심신 수련에만 힘쓰는 것이 좋다. 또한 명당은 3대에 걸쳐 덕을 쌓아야 차지한다고 했으니, 심마니가 산삼을 발견하는 운 정도로 여긴다면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용’이란 산줄기를 뜻하는 풍수적 용어다. 일어섰다 엎드렸다 하는 산줄기를 용이 풍운조화를 일으키는 모습으로 본 것이다. ‘명산에 명당이 없다’란 말의 진실된 의미는 명산은 명당이란 열매가 달리는 가지의 끝이 아니라 열매를 열게 하는 뿌리라는 사실이다.

수박이 달리는 위치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수박은 넝쿨의 뿌리나 큰 줄기에는 달리지 않는다. 큰 줄기에서 나온 가지 끝에 새순이 돋고, 그곳에 꽃이 핀 다음에 수박이 열린다. 즉 뿌리에서 생성된 생기라는 에너지는 줄기라는 통로를 지나 가지의 끝에 모이고, 그 생기의 발산으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다. 비단 수박만이 아니라 우리가 먹는 모든 과일이 그렇다.

만물을 성장·발육시키는 생기 에너지가 최대 한도로 응집된 장소를 풍수는 혈이라 부른다. 명당은 혈을 포함한 주변의 평평한 땅을 말한다. 그리고 태조산은 혈의 발원이 되고 혈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서 위용이 빼어난 산을 가리킨다.

한국 전체의 태조산은 백두산이다. 한 지방만을 이야기할 때면 설악산, 속리산, 지리산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명산이 여기에 해당한다.

중조산은 태조산 다음으로 웅장함을 갖춘 산이다. 혈을 만들기 위해 최종적으로 생기가 응결된 산이 소조산 혹은 주산이다. 집에서 쓰는 전구를 혈이라고 가정하면 태조산은 발전소(수박의 뿌리)다. 중조산은 변전소(수박의 넝쿨), 소조산은 변압기(수박의 가지)다. 두꺼비집이란 안전장치(풍수는 입수)를 거쳐 비로소 전구에 불이 들어온다.

명산으로 소문난 산들은 대개 태조산이나 중조산에 해당한다. 발전소와 변전소의 전기를 어찌 가정에서 직접 쓸 수 있겠는가? 전압을 낮춰야만 가정에서 쓰듯이 명산에서 발생하는 생기 역시 혈로 흘러 들어가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자연현상은 일정한 순환을 반복한다. 수박이 가지 끝에 달리는 이치는 과거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다. 따라서 생기가 모인 명당은 명산의 깊은 산 속에 숨어 있지 않고 산줄기가 물을 만나 더 이상 진전치 못하고 멈춰 선 그곳에 있다. 그러니 명당을 찾아 나선다면 물줄기가 굉음을 내며 흐르는 경관이 수려한 산 또는 바구니를 들고 산나물 뜯던 산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소용없다. 마을의 야트막한 뒷산이나 높은 산에서 논밭으로 내리뻗은 산줄기의 끝 지점에 명당이 있다. 그러니 돌 치우며 가재 잡던 도랑물이 졸졸 흐르는 야산이거나 아니면 ‘메밀꽃 필 무렵’에서 조 선달과 허 생원이 봉평장에서 대화장으로 가며 걷던 산길 가까운 어느 곳에 있다.

고제희 < 대동풍수지리학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