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이번 대선은 양자대결 구도 속에서 진보와 보수가 총집결해 초박빙으로 치러진 최초의 선거였다. 그런데 이번 대선은 국민의 새 정치에 대한 열망으로 분출된 ‘안철수 현상’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안철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선거판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이런 안철수 현상은 여야 후보들로 하여금 정치 쇄신 경쟁을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기여했다. 하지만 여야 모두 과거와 같이 ‘한탕주의’와 ‘한방주의’의 유혹에 빠지도록 하는 역효과도 있었다.

무엇보다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 간에 지루하게 전개됐던 야권 단일화는 선거의 모든 쟁점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결과적으로 후보들의 자질과 능력, 비전과 정책을 검증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 특히, 야권은 후보 단일화만 성사되면 무조건 승리한다는 한방주의에 매몰돼 여당과 차별화되는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새 대통령이 선거 과정에서 약속한 새 정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대통령의 권력 집중을 막고, 국회의원 정수를 조정하고,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고, 권력기관을 중립화시키고, 부패 정치를 청산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예측가능한 정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정당과 선거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혁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 더 이상 링 위에서 경쟁하는 후보보다 링 밖에서 관전하는 사람이 선거를 주도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재연되지 않도록 새로운 규범과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 개인이 만든 것은 아니다. 국민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불신받는 기존 정당들의 허약한 체제가 만든 부산물이다. 정당들이 민생을 외면한 채 당리당략에 빠져 허구한 날 싸움만 하고 음습한 계파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기형적 정치 상황이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따라서 정치권은 안철수를 비난하기 전에 왜 안철수 현상이 나타났었는지 다시금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

새 대통령은 ‘정치 쇄신의 시작은 정당 개혁이다’는 흔들림 없는 신념과 함께 여야 정당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민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개혁을 할 수 있도록 ‘변화와 개혁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정당이 변해야 정치가 변하고, 정치가 변해야 사회가 변한다. 이를 외면하면 안철수 현상은 다시 분출될 것이다. 국민들의 새 정치에 대한 열망은 없어진 게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의 또 다른 특징은 선거 막판에 국정원 여직원의 선거 개입 의혹,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불법 선거 운동 등이 불거지면서 비방·흑색 선전이 난무했다. 네거티브 한방이면 판세를 일거에 뒤집을 수 있다는 착각이 낳은 결과였다. 정책 경쟁이 활발히 이뤄지면 네거티브는 설 땅을 잃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누가 대한민국을 이끌 능력과 비전을 갖춘 적임자인지 제대로 된 검증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기존 TV 토론의 절차, 내용, 방식 등에 대해 폭 넓은 개혁이 있어야 한다.

새 대통령은 새 정치를 위한 이 같은 정치 쇄신뿐만 아니라 역대 대통령 누구도 해 보지 못한 최초의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한 길을 가야 한다. 새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는 진보와 보수 두 쪽으로 갈라진 대한민국을 통합하는 것이다. 새 대통령은 정치를 무시하지 말고 국회가 정치의 중심이 되도록 여야 모두로부터 스스로 견제 받는 최초의 대통령이 돼야 한다. 집권당을 통해 국회를 지배하려는 유혹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5년 단임제의 구조적 한계를 깨닫고 많은 것을 하기보다는 이 시대가 절실히 요구하는 과제 하나라도 확실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국정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집행해야 한다. 대통령 스스로가 도덕적 우월주의에 빠져 야당을 악의 축으로 여기고 편가르기와 극단의 정치에 매몰되면 실패한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깊이 명심해야 한다.

김형준 < 명지대 교수·정치학 db827@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