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에서 ‘우리말 지킴이’로 변신한 방송인 정재환 씨(51·사진)가 한글 연구로 박사모를 쓴다. 논문 제목은 ‘해방 후 조선어학회·한글학회 활동 연구(1945~1957년)’로 지난주 성균관대 사학과 박사학위 심사를 통과했다.

정씨는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논문 3차 심사를 마치고 대기실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10분이 정말 길었다”며 “논문 통과 소식을 들었을 땐 그동안 어깨에 매고 다녔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이자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심의회 위원이기도 한 정씨는 한국외국어대 말레이인도네시어과 82학번이다.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에 입대한 그는 제대 후 방송활동으로 학교를 그만뒀다. 1979년 그룹 ‘동시상영’으로 연예계에 데뷔한 이후 1983년 MBC ‘영11’을 거쳐 1980년대 후반 각종 개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인기를 끌었다. 그랬던 정씨가 공부의 길을 택한 것은 2000년, 39세 때였다.

성균관대 사학과 ‘00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스무 살이나 어린 동급생들과 경쟁해 3년 만에 인문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대학원에 진학, 4년 만에 석사학위를 받았다. 석사학위 논문은 ‘이승만 정권 시기 한글 간소화 파동 연구’. 그는 “지금이야 한글이 완전히 자리잡았지만, 한자가 사라진 한글 전용 시대는 광복 이후 이제 겨우 60년 정도”라며 “자연스럽게 한글시대가 온 것 같지만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 등 한글 연구자들이 흘린 땀의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광복은 일제에 빼앗겼던 나라뿐만 아니라 민족혼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어를 되찾아온 의미가 있다”며 “역사학은 물론 언어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22년 만에 다시 공휴일로 지정된 한글날의 의미에 대해 묻자 대뜸 “만세”라고 답했다. “개인에게 있어 가장 큰 기념일은 생일이지요. 생일이 없다는 말은 존재 자체가 없는 것일테고요. 마찬가지로 한국인에게 한글날은 그런 의미라고 봅니다.”

방송진행자로서의 ‘우리말 지킴이’에서 이젠 ‘한글 박사’가 된 정씨에게 강단에 설 계획을 물었다. “하하, 논문 한 편 썼다고 학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국어와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 공부를 하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뿐입니다. 그동안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언어 문화’에 대한 방송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싶어요. 이를 통해 한글의 중요성을 더 재밌게 알리는 게 작은 희망입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