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물가 민생부담"…高환율 시대 마감하나
최근 지속되고 있는 원화 강세는 대선 이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서민경제 회생 및 중산층 복원을 내세우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고환율에 따른 물가 상승에 부담을 느낄 가능성이 높은 데다 최근 선진국의 잇따른 양적완화로 외국인 자금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 경상수지 흑자도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다. 다만 박 당선자가 경제민주화와 성장이라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여 환율 하락 속도는 완만할 것이란 전망이다.

○고환율 시대 저물 듯

원·달러 환율은 지난 18일 1070원 선 붕괴 위기에 몰렸다. 시장개입성 달러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30전 오른 1072원80전에 마감했다. 장중 저가 기준으로 지난해 9월8일 이후 15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지난 9월13일 미국이 3차 양적완화를 발표한 이후 4.9%나 급락했다.

박 당선자는 기본적으로 ‘환율은 시장에서 정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간 공약이나 발언을 종합할 때 원·달러 환율 하락 추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위원은 “박 당선자가 민생정부와 경제민주화를 강조하고 있어 이명박 정부가 암묵적으로 용인한 고환율 정책을 유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당선자의 측근이자 경제통인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최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일부 대기업과 수출을 지원하기 위해 생활비 부담을 높이는 고환율 정책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박 당선자가 경제민주화뿐 아니라 성장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있어 환율 하락 속도는 더딜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성장에 부담이 되는 수준까지 하락하는 것은 용인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대한상의가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기업 규모별 환율 마지노선은 대기업이 1076원10전, 중소기업은 1090원40전이다. 박 당선자는 지난 10일 열린 2차 TV토론에서 “수출과 내수가 함께 가는 쌍끌이 경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향후 원·엔 환율 추이에 관심을 둘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본은 자동차, 정보기술(IT), 기계 등 주요 품목에서 한국과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환율 하락 추세 유지

시장 여건은 원·달러 환율 하락을 가리키고 있다. 미국 재정절벽 협상의 타결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위험자산인 원화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3차 양적완화에다 내년부터 매월 450억달러 규모의 국채를 매입하기로 하면서 글로벌 유동성은 더욱 풍부해질 전망이다. 여기에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 자유민주당 총재가 대규모 양적완화를 주장하며 엔화 약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전 연구위원은 “미국에 이어 일본 중앙은행도 강력한 양적완화를 펼칠 것이라는 분석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투자은행(IB)들도 원화 강세를 예상하고 있다. HSBC와 바클레이즈는 내년에 원화 가치가 달러당 1050원까지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외환당국은 속도감에 경계를 표하고 있다. 환율정책은 새 정부가 판단할 몫이지만 경상수지를 안정적으로 내야 하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특성을 무시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더구나 미국과 일본의 양적완화로 글로벌 환율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도 원화 강세 기조를 방관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외환당국의 한 관계자는 “당분간 환율은 큰 변동 없이 1070원대에서 유지될 것으로 본다”면서 “환율 안정을 위한 연내 추가 대책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환/이심기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