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트리플딥(triple dip·삼중 경기 침체)’의 공포에 빠졌다. 지난 여름 런던올림픽을 개최한 경제효과로 ‘더블딥(double dip·이중 경기 침체)’을 극복했다는 평가가 나온 지 1개월여 만이다. 제조업 생산을 비롯한 주요 경제지표가 악화하면서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하향 조정되고 있다. 영국 정부 내에서는 일본식 장기 침체가 임박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일본식 장기 불황 가능성”

빈스 케이블 영국 산업경제부 장관은 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옵서버와 가진 인터뷰에서 “영국 경제가 트리플딥에 빠질 위험이 있다”며 “일본이 겪은 ‘잃어버린 10년’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고위 관료가 트리플딥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지 오즈번 재무장관도 지난 5일 비관적인 경제 전망을 내놨다. 그는 성명을 통해 올해 영국 경제성장률이 -0.1%를 기록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3월 내놓은 성장률 전망치는 0.8%였다. 내년 전망치 역시 2%에서 1.2%로 낮춰 잡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08년부터 6분기 연속 전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했던 영국 경제는 2009년 3분기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 탓에 작년 4분기부터 다시 3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나타내며 더블딥에 빠졌다.

7, 8월에 걸쳐 치러진 런던올림픽 효과로 10월 발표된 3분기 경제성장률은 1%로 반등했지만 이번에는 트리플딥 가능성에 직면한 것이다.

◆‘반짝효과’ 그친 올림픽 경제효과

영국 경제가 더블딥을 거쳐 트리플딥 위기를 맞은 것은 크게 두 가지 때문으로 분석된다.

유로존 재정위기가 장기화한 데다 2010년 집권한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급격한 재정 긴축 정책을 쓴 부작용이 컸다. 영국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2%에 달해 유럽연합(EU)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지출을 대폭 삭감했다.

런던올림픽 개최로 기대한 경기 부양 효과도 크지 않았다. 한 분기 정도 경기를 부양했지만 침체 추세를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마이클 손더스 씨티그룹 연구원은 “올림픽으로 인한 경제효과는 경기장 건설 등으로 지난 2~3년간 이뤄졌으며 올림픽 이후에는 제한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지난 주말 발표된 11월 제조업 생산은 전월 대비 1.3% 뒷걸음질쳤다.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도 50.2로 2년 만의 최저치였다.

이처럼 비상벨이 울리고 있지만 영국 정부는 긴축정책을 고수한다는 방침이다. 오즈번 장관은 “다시 방만한 재정지출로 돌아가면 영국 경제는 돌이킬 수 없는 침체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에 달하는 청년실업률이라도 줄여야겠지만 고용정책 결정권은 EU에 있다.

캐머런 총리는 EU에서 고용과 어업 등에 관련한 정책 결정권을 회수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EU는 일찌감치 “회원국 간 정책 일관성을 해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