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푸어 구제책이 겉도는 3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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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우스푸어 : 집은 있지만 대출이 많아 빈곤하게 사는 사람 >
우리銀'트러스트 앤드 리스백' 1명만 신청
집을 사느라 목돈을 빌린 뒤 집값은 떨어지고 빚 갚기는 어려워져 생활고를 겪고 있는 ‘하우스푸어’들에 대한 각종 구제책이 실제 효과를 보지 못한 채 겉돌고 있다. 대표적인 하우스푸어 구제책으로 우리금융이 지난달 초 선도적으로 내놓은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의 신청자는 한 달이 넘도록 1명뿐이다. 당초 700여명이 수혜를 볼 것이란 예상은 어긋났다.
전문가들은 하우스푸어 구제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이유로 세 가지를 꼽고 있다. 첫째, 진단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하우스푸어 문제가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둘째, 지금껏 나온 하우스푸어 구제책에 허점이 많다는 주장이다. 셋째, 차기 정부에 더 많은 혜택을 주는 제도가 나올 것으로 기대해 ‘버티는’ 이들이 많다는 분석이다.
1. 부실한 현황 파악…명확한 통계 없이 선제 대응만 강조
‘하우스푸어’에 대한 대책 마련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올해 중순부터다. 가계부채가 1000조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경기가 나빠지고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자 하우스푸어 문제가 대두됐고, 금융감독 당국에서 ‘선제적 대응’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각각 “가계부채 부실 문제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금융지주사 회장들을 불러 ‘대책을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시장에선 ‘문제가 커지기 전에 정부가 대출자들을 구제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최근 기류는 다르다. 권 원장은 “문제가 심각한지 따져볼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아예 “하우스푸어는 전 국민의 0.56%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하우스푸어 현황을 면밀히 파악하기도 전에 은행들이 구제책을 내놓으면서 혼란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서정호 금융연구원 금융산업연구실장은 “가계부채 스트레스테스트 결과를 보면 하우스푸어 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나, 현재 국민들에게 알려진 것처럼 위험한 것은 아니고 통제 가능한 것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김인철 성균관대 교수는 “선제적 대응이 아니라 ‘서두른’ 대응이 된 셈”이라며 “문제의 위험성부터 부각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신중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2. 구제책 자체도 현실성 없어
대상 자격 조건 까다로워…신청 예상밖 저조
제도 자체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금융의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 이용조건은 실제로 상당히 까다롭다. 일단 우리은행에서만 담보대출을 받았어야 한다. 다중채무자는 제외된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80% 이내여야 한다. 소득증빙이 있어야 하고 1인 1주택자여야 한다. 압류·가압류·소송 등이 있어도 지원 대상에서 빠진다.
우리은행도 이를 알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빚을 갚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대개 다른 금융회사에 빚이 있거나 가압류 등이 설정돼 있고, 이런 문제가 없다면 대출자가 일시적으로 연체했을 뿐 정상적으로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신청자가 많은 신한은행도 효과 측면에서 논란이 적지 않다. 이자를 1년간 유예해 주는 장점은 있지만 이자율을 낮춰주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유예만 하는 것이어서 결국 1년 뒤에는 미뤄둔 이자 부담을 한꺼번에 떠안게 된다. 그 사이 집을 팔지 않았다면 상황은 크게 개선되기 어렵다.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는 “문을 아주 좁게 열어놓고 들어오라면 누가 들어갈 수 있겠느냐”며 “특히 다중채무자 문제는 특정 은행이 의지를 갖는다고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은행권 공동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3. 대선후 추가대책 기대감…더 주길 바라고 '버티는' 하우스푸어 많아
선거철을 앞두고 포퓰리즘이 판치는 것도 하우스푸어 구제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원인이다.
하우스푸어들이 새 정부가 더 강력한 대책을 내놓을 것을 바라면서 구제 신청을 미룬다는 것이다.
실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공공기관인 자산관리공사(캠코)가 하우스푸어 주택의 지분 일부를 인수해 주는 방식으로 재정을 투입해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전세금 상승으로 고민하는 세입자들을 위해 집주인이 추가 대출을 받고 세입자가 대출금 이자를 내는 ‘돈 안 드는 전세제도’도 제시했다. A은행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박 후보의 가계부채 대책은 실제 추진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일단 국민들에게 ‘어쨌든 더 강한 대책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직접 재정투입 등을 약속하진 않았지만 약탈적 대출을 해 준 금융사에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발언하고 있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은 “시장에선 새 정부가 들어오면 더 파격적인 구제책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다”며 “정치권이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은/류시훈 기자 selee@hankyung.com
집을 사느라 목돈을 빌린 뒤 집값은 떨어지고 빚 갚기는 어려워져 생활고를 겪고 있는 ‘하우스푸어’들에 대한 각종 구제책이 실제 효과를 보지 못한 채 겉돌고 있다. 대표적인 하우스푸어 구제책으로 우리금융이 지난달 초 선도적으로 내놓은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의 신청자는 한 달이 넘도록 1명뿐이다. 당초 700여명이 수혜를 볼 것이란 예상은 어긋났다.
전문가들은 하우스푸어 구제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이유로 세 가지를 꼽고 있다. 첫째, 진단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하우스푸어 문제가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둘째, 지금껏 나온 하우스푸어 구제책에 허점이 많다는 주장이다. 셋째, 차기 정부에 더 많은 혜택을 주는 제도가 나올 것으로 기대해 ‘버티는’ 이들이 많다는 분석이다.
1. 부실한 현황 파악…명확한 통계 없이 선제 대응만 강조
‘하우스푸어’에 대한 대책 마련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올해 중순부터다. 가계부채가 1000조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경기가 나빠지고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자 하우스푸어 문제가 대두됐고, 금융감독 당국에서 ‘선제적 대응’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각각 “가계부채 부실 문제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금융지주사 회장들을 불러 ‘대책을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시장에선 ‘문제가 커지기 전에 정부가 대출자들을 구제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최근 기류는 다르다. 권 원장은 “문제가 심각한지 따져볼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아예 “하우스푸어는 전 국민의 0.56%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하우스푸어 현황을 면밀히 파악하기도 전에 은행들이 구제책을 내놓으면서 혼란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서정호 금융연구원 금융산업연구실장은 “가계부채 스트레스테스트 결과를 보면 하우스푸어 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나, 현재 국민들에게 알려진 것처럼 위험한 것은 아니고 통제 가능한 것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김인철 성균관대 교수는 “선제적 대응이 아니라 ‘서두른’ 대응이 된 셈”이라며 “문제의 위험성부터 부각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신중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2. 구제책 자체도 현실성 없어
대상 자격 조건 까다로워…신청 예상밖 저조
제도 자체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금융의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 이용조건은 실제로 상당히 까다롭다. 일단 우리은행에서만 담보대출을 받았어야 한다. 다중채무자는 제외된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80% 이내여야 한다. 소득증빙이 있어야 하고 1인 1주택자여야 한다. 압류·가압류·소송 등이 있어도 지원 대상에서 빠진다.
우리은행도 이를 알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빚을 갚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대개 다른 금융회사에 빚이 있거나 가압류 등이 설정돼 있고, 이런 문제가 없다면 대출자가 일시적으로 연체했을 뿐 정상적으로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신청자가 많은 신한은행도 효과 측면에서 논란이 적지 않다. 이자를 1년간 유예해 주는 장점은 있지만 이자율을 낮춰주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유예만 하는 것이어서 결국 1년 뒤에는 미뤄둔 이자 부담을 한꺼번에 떠안게 된다. 그 사이 집을 팔지 않았다면 상황은 크게 개선되기 어렵다.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는 “문을 아주 좁게 열어놓고 들어오라면 누가 들어갈 수 있겠느냐”며 “특히 다중채무자 문제는 특정 은행이 의지를 갖는다고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은행권 공동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3. 대선후 추가대책 기대감…더 주길 바라고 '버티는' 하우스푸어 많아
선거철을 앞두고 포퓰리즘이 판치는 것도 하우스푸어 구제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원인이다.
하우스푸어들이 새 정부가 더 강력한 대책을 내놓을 것을 바라면서 구제 신청을 미룬다는 것이다.
실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공공기관인 자산관리공사(캠코)가 하우스푸어 주택의 지분 일부를 인수해 주는 방식으로 재정을 투입해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전세금 상승으로 고민하는 세입자들을 위해 집주인이 추가 대출을 받고 세입자가 대출금 이자를 내는 ‘돈 안 드는 전세제도’도 제시했다. A은행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박 후보의 가계부채 대책은 실제 추진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일단 국민들에게 ‘어쨌든 더 강한 대책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직접 재정투입 등을 약속하진 않았지만 약탈적 대출을 해 준 금융사에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발언하고 있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은 “시장에선 새 정부가 들어오면 더 파격적인 구제책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다”며 “정치권이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은/류시훈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