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는 지난 6월 경기 이천 본사에서 ‘미래상품전략회의’를 열고 3차원(3D) 적층 기술에 대해 논의했다. 연구·개발(R&D)팀은 권오철 사장(사진)에게 “3D 낸드플래시를 개발하고 있는데 칩을 쌓으면 자꾸 무너져 방법을 찾고 있다”고 보고했다.

3D 적층 기술은 메모리 반도체의 회로 선폭을 줄여 집적도를 높이는 미세공정 기술과 달리 칩을 위로 쌓아 집적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최근 미세공정 기술이 20나노(㎚·머리카락 1만분의 1 굵기)대로 들어서며 개발 속도가 느려지자 대안으로 연구되고 있다. 이 기술의 풀지 못한 과제는 쌓은 칩이 쉽게 무너진다는 것이다.

회의가 끝난 뒤 R&D 팀원들과 점심을 먹던 도중 권 사장이 갑자기 제안을 했다. “칩을 이런 식(특허여서 표현할 수 없음)으로 쌓으면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데…”라며 아이디어를 낸 것.

R&D팀은 무릎을 쳤다. 곧바로 플래시 공정1팀의 피승호 상무와 이기홍 수석은 권 사장의 아이디어를 실제 적용할 수 있는지 분석에 들어갔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선행기술을 조사하고 특허전문가를 불러 컨설팅받은 뒤 지난 8월31일 ‘메모리의 용량 증가를 위해 필요한 적층을 견고하게 하고, 미세화에 따른 작은 공간 내 셀 구조를 효율적으로 배치하기 위한 기술’을 특허청에 특허출원했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에서도 이 기술에 대한 특허 출원을 진행 중이다. 회사 관계자는 “이 특허는 기술 개념에 해당돼 향후 권리보호 범위가 확대되면 유사한 구조에 대해서도 발명 우선권을 갖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 사장은 기술자가 아니다. 서울대 무역학과를 나와 1984년 현대전자에 입사한 뒤 재무, 전략, 해외영업 부문을 거쳤을 뿐 R&D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30년에 가까운 반도체 산업 현장 경험과 직관으로 3D 기술의 해법을 찾아낸 것이다. 권 사장은 “상식적 차원의 제안이었는데 특허로 구체화됐다”고 쑥스러워했다. 그는 “반도체는 기술력이 기반이 되는 산업으로 특허가 중요하다”며 “임직원이 특허에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