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한숨으로 눈물을 가리는 것은 백성들의 고난이 애처롭기 때문이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2006년 외신기자들 앞에서 초나라 굴원의 시(詩) 이소(離騷)의 한 구절을 읊었다. “잠들기 전 어떤 문제로 고민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시를 암송할 때 비치던 원 총리의 눈물은 다른 때도 종종 목격되곤 했다. 2008년 쓰촨성 대지진 때는 흙더미에 갇혀있던 어린아이에게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 원 할아버지야. 조금만 참아”라고 말해 감동을 줬었다.

올해 70살인 원 총리는 평민총리로 불린다. 총리가 된 뒤에도 10년이 넘은 점퍼를 그대로 입고 다니는 게 화제가 됐었다. 시골마을을 순시하던 중 운동화의 밑창이 떨어져 긴급 수선을 맡기는 일도 있었다. 광산의 깊은 갱에 내려가 광부들과 도시락을 먹기도 했다. 권위 의식이 없이 국민에게 다가가는 그를 젊은 네티즌은 ‘원 형님(溫哥)’이라고도 부른다.

원 총리는 가난한 지리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베이징 지질학원에 입학, 기술관료의 길을 걷다가 1982년 중앙정계로 발탁됐다. 깔끔하고 뛰어난 업무처리 능력보다 더 유명한 것은 타고난 정치감각이다. 그는 후야오방 자오쯔양 장쩌민 등 공산당 총서기 3명의 비서실장(중앙판공청 주임)을 역임했다. 권력투쟁을 벌이던 적대적 관계의 보스들을 연달아 모신 것은 그가 아니면 불가능했다는 평이다. 어떤 환경에서든 생존 비법을 찾아내는 데는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는 것이다.

심지어 서민총리나 원 형님 등의 이미지는 출세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중국의 반체제 작가인 위제는 재작년에《중국 최고의 연기자, 원자바오》라는 제목의 책을 내기도 했다. 그는 “원자바오가 눈물과 찢어진 운동화로 감동을 주지만 반체제 인사에 대한 탄압은 이전 시대보다 훨씬 강해졌다”고 주장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원 총리 일가의 자산이 3조원에 달한다고 최근 보도했다. 보석연합회장인 부인과 사모펀드를 운영하는 아들뿐 아니라 처남과 동생일가도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것이다. 물론 총리는 즉각 성명서를 내고 이를 부인했지만 믿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원 총리가 정말로 ‘겉은 서민, 속은 거부’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러나 다른 정치인의 가족처럼 각종 이권에 개입한다는 소문은 끊이지 않았다. 다음달 정권교체를 앞두고 현직 총리 일가의 재산문제가 불거진 것은 예사롭지 않다. 보시라이 축출에 앞장선 그에 대한 극좌파의 보복이라는 설도 있다. 음모와 술수의 권력투쟁이 정말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래저래 흥미진진한 나라다.

조주현 논설위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