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어 일본에서도 ‘재정벼랑(fiscal cliff)’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총선’이라는 정치적 목적에 발목이 잡혀 적자국채 발행 법안의 의회 통과가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벼랑은 급격한 재정지출 축소로 경제 전반이 충격을 받는 현상을 말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6일 “적자국채 발행 법안이 조속히 통과되지 않을 경우 다음달 말에는 정부의 공공 서비스 재원이 바닥난다”며 “일본판 재정벼랑이 임박했다”고 경고했다.

채권시장 등 금융시장 참여자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채권 가격의 급등락 등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일본 재무성이 부랴부랴 이날 은행 보험회사 등 주요 채권 투자자들을 불러모아 긴급회동을 가질 정도로 시장의 불안 수위는 높아졌다.

일본은 빚을 내지 않고서는 재정 운용이 불가능한 나라다. 매년 적자국채를 찍어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올해 예산 90조3000억엔 중에서도 38.8%는 채권 발행을 통해 충당하기로 계획이 짜여 있다.

문제는 이런 적자국채 발행을 허용하는 법안이 의회에서 잠을 자고 있다는 것. 그동안 재무성은 지방교부금 등 국민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항목부터 지급을 연기하는 방식으로 예산을 아껴왔지만 그마저도 한계에 봉착했다. 다음달 말이면 정부 곳간이 바닥을 드러낸다.

그러나 총선 시기를 둘러싼 일본 여야 정치권의 갈등이 적자국채 발행 법안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자민당 등 야당은 법안 통과를 볼모로 조기 총선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를 포함한 집권 민주당은 최대한 선거 시기를 미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를 밑도는 현재의 민주당 지지율로는 선거를 치러봐야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금융시장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일본의 정치 불안이 시장에 실질적인 불안 요소가 됐다”며 “(재정벼랑으로 인한) 일본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보도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