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가짜 실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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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백수생활이 궁극에 다라 생존이 여의치 아니할 새, 이런 전차로 어린 백수가 이루고자 할 배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실컷 펴지 못할 노미 하다. 이를 어엿비 여겨 새로 백수인권선언을 맹가노니 백수마다 쉽게 먹고 삶에 편안케 하고저 할 따름이다.’ 2004년 말 전국백수연대(전백련)가 선포한 ‘백수인권선언문’이다.
백수의 사전적 의미는 ‘돈 한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이지만 전백련이 규정하는 백수는 좀 다르다. 구직활동을 하는 실업자와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준실업자, 실업과 취업을 넘나드는 비정규직 근로층, 파산상태에 놓인 영세사업자를 포괄한다. 취업준비 등 나름대로 뭔가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일을 하지 않는 건 물론 일할 의지조차 없는 부류가 있다. 직업 교육이나 훈련도 받지 않은 채 경제활동을 접고 그냥 노는 축이다. 한때 일자리를 찾아봤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일할 의사가 별로 없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무업자(無業者)나 무위도식족(族)쯤 되겠다.
요즘엔 ‘가짜 실업자’까지 나오는 모양이다. 이들은 일단 취직해 6, 7개월쯤 일하다가 그만두면서 실업수당을 챙기는 걸 목표로 삼는다. 스스로 사표를 냈으면서도 실업급여 요건을 맞추기 위해 회사에는 권고사직한 것으로 처리해달라고 요구하는 수법을 쓴다. 심지어 서너달 실업급여를 받으며 쉬다가 옆 가게에 취업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실업급여 부정 수급자 2만7000여명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가짜인 것으로 추정된다. 인터넷에는 실업급여를 속여 타는 방법을 묻고 답하는 글이 숱하게 올라와 있다. ‘평소 병가와 반차를 자주 내서 권고사직당했다고 서류에 쓰면 된다’는 식의 내용이다. 정치권에 만연한 복지포퓰리즘의 부작용이라고 해야 할까.
어떻든 힘 안 들이고 돈 받아가며 놀겠다는 계산이겠지만 뭔가 잘못 짚었다. 공짜로 들어온 돈이 가치 있게 쓰일 리 없기 때문이다. 땀흘려 일하지 않는다면 진짜 휴식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떤 분야든 일이란 진지하고 경건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평생 보일러공으로 살아온 이면우 시인의 일에 대한 생각은 이렇다. ‘고맙다 저 불길, 참 오래 날 먹여 살렸다 밥, 돼지고기, 공납금이/ 다 저기서 나왔다 녹차의 쓸쓸함도 따라나왔다 내 가족의/ 웃음, 눈물이 저 불길 속에 함께 타올랐다/ 불길 속에서 마술처럼 음식을 끄집어내는/ 여자를 경배하듯 나는 불길에게 일찍 붉은 마음을 들어 바쳤다…/ 그래, 지금처럼 나와/ 가족을 지켜다오 때가 되면/ 육신을 들어 네게 바치겠다.’(‘화엄경배’)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백수의 사전적 의미는 ‘돈 한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이지만 전백련이 규정하는 백수는 좀 다르다. 구직활동을 하는 실업자와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준실업자, 실업과 취업을 넘나드는 비정규직 근로층, 파산상태에 놓인 영세사업자를 포괄한다. 취업준비 등 나름대로 뭔가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일을 하지 않는 건 물론 일할 의지조차 없는 부류가 있다. 직업 교육이나 훈련도 받지 않은 채 경제활동을 접고 그냥 노는 축이다. 한때 일자리를 찾아봤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일할 의사가 별로 없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무업자(無業者)나 무위도식족(族)쯤 되겠다.
요즘엔 ‘가짜 실업자’까지 나오는 모양이다. 이들은 일단 취직해 6, 7개월쯤 일하다가 그만두면서 실업수당을 챙기는 걸 목표로 삼는다. 스스로 사표를 냈으면서도 실업급여 요건을 맞추기 위해 회사에는 권고사직한 것으로 처리해달라고 요구하는 수법을 쓴다. 심지어 서너달 실업급여를 받으며 쉬다가 옆 가게에 취업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실업급여 부정 수급자 2만7000여명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가짜인 것으로 추정된다. 인터넷에는 실업급여를 속여 타는 방법을 묻고 답하는 글이 숱하게 올라와 있다. ‘평소 병가와 반차를 자주 내서 권고사직당했다고 서류에 쓰면 된다’는 식의 내용이다. 정치권에 만연한 복지포퓰리즘의 부작용이라고 해야 할까.
어떻든 힘 안 들이고 돈 받아가며 놀겠다는 계산이겠지만 뭔가 잘못 짚었다. 공짜로 들어온 돈이 가치 있게 쓰일 리 없기 때문이다. 땀흘려 일하지 않는다면 진짜 휴식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떤 분야든 일이란 진지하고 경건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평생 보일러공으로 살아온 이면우 시인의 일에 대한 생각은 이렇다. ‘고맙다 저 불길, 참 오래 날 먹여 살렸다 밥, 돼지고기, 공납금이/ 다 저기서 나왔다 녹차의 쓸쓸함도 따라나왔다 내 가족의/ 웃음, 눈물이 저 불길 속에 함께 타올랐다/ 불길 속에서 마술처럼 음식을 끄집어내는/ 여자를 경배하듯 나는 불길에게 일찍 붉은 마음을 들어 바쳤다…/ 그래, 지금처럼 나와/ 가족을 지켜다오 때가 되면/ 육신을 들어 네게 바치겠다.’(‘화엄경배’)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