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샤피로 하버드대학교 협상학 교수는 2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인재포럼 2012'에 참석해 '설득(소통)하는 인재, 세상을 바꾸는 협상'을 주제로 기조 연설을 했다.

다음은 다니엘 샤피로 교수의 기조연설 전문.

이 자리에 서게 돼 무척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특히 김황식 총리께 감사드린다. 한국경제신문 김기웅 사장과 여러분 모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조금 전 브라운 총리가 말씀하셨듯이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전적으로 동감한다. 교육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사실이나 숫자 등을 교육하는 것, 이것은 암기식 교육이다. 두 번째 유형은 사람에 대한 것이다.

오늘 하버드 프로젝트팀이 연구해온 결과에 대해 말씀드리겠다. 이 프로젝트는 협상력을 기르고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시작됐다. 세계 리더들이 협상을 좀 더 잘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프로젝트다. 장기적으로 전 세계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협상 기술과 갈등 해소 능력을 교육받는다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 지 기대된다.

남북한 간의 여러가지 긴장, 어제 있었던 사건(탈북자 단체의 파주 임진각 인근 자유로 대북전단 풍선 살포 시도) 들을 보면서 생각해봤다. 한국의 상황에 대해선 여러분께서 보다 더 잘 알 것이다. 1976년 군사분계선에서 발생한 사건(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이 있다.

당시 미루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잎이 무성해지면서 매년 군사 분계선이 잘 안보이게되자 한국 측에선 가시권 확보를 위해 미루나무의 가지 치기 작업을 해왔다. 그런데 1976년 북한 측이 갑자기 정리 작업을 하면 총을 쏘겠다고 협박하며 쫓아냈다. 안보 문제때문에 한국군과 미군 그리고 UN군까지 한 팀이 돼 그 나무를 자르기 시작했다. 미루나무 정리 작업을 둘러싸고 양측에 충돌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많은 한국군과 북한군이 부상을 당했고 2명의 미군의 목이 베어졌다.

이 사건은 당시 헨리 포드 대통령에게 보고됐고 포드 대통령은 당시 미 국무장관이던 헨리 키신저에게 조언을 구했다. 키신저 장관은 "북한군을 폭파해야 한다"고 했고 포드 대통령은 "나무를 베어버리는게 낫다"는 현실적인 방법을 택했다. 결국 무장받은 군부대와 폭격기가 동원돼 문제의 미루나무를 제거했다. 1시간이 걸렸고 더 이상 출혈사태는 없었다. 단 한 그루의 나무 때문에 3차 세계대전을 방불케 하는 극도의 긴장감이 조성됐다.

근본적인 질문을 하겠다. 협상을 할 때 그것이 군사적인 문제이건 정치적인 문제이건 가족간의 협상이건 감정적인 측면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이 시간에 다루고자 하는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협상을 하면서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어제 탈북자 단체들이 날리려고 시도하던 풍선을 보면서 극도의 긴장감을 느꼈다. 이처럼 정치적으로 긴장이 고조될 때 또는 생명이 위태로움을 느낄 때는 수많은 감정이 엇갈린다.

지금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감정을 모두 다루지 말라는 것이다. '코어 컨선(core concerns)'에 관심을 집중시키면 협상에 힘을 얻게된다. 협상력이 생긴다. 코어 컨선 중 세 가지에 대해 말씀 드리겠다.

1. 어프리시에이션(Appreciation), 인정이다. 상대가 나를 무시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그런데 최근 과학적으로 인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이있는 지 인식하게 됐다.

신혼부부를 실험실로 초대해 혈압 신체반응 표정 등을 점검하며 15분 간 '최근 둘 사이에 있었던 갈등 상황'에 대해 얘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실험 결과, 약 90%의 커플이 계속 부부로 남을 지 30초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부부생활을 향후 지속할 커플은 '당신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말을 많이 나눴다. 반면 이혼이 예측되는 부부는 칭찬을 한 번 할 때 부정적인 말을 5번 했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기업 환경에도 적용된다. 조직이 실패하는 원인은 조직 내 한 팀원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라는 실험 결과가 있다.

이는 뉴욕 경찰청도 마찬가지다. 정신분열증인 26살 남성이 지하철에서 아이를 안고있는 20살 여성에게서 아이를 뺏고 청소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경찰청이 5~10분 뒤 출동했을 때 이 남성은 "이 아이가 천사면 살리고 악마면 죽이겠다"고 말했다.

경찰들은 무조건 문을 두드리며 열어달라고 했지만 이런 접근 방식은 성공하지 못했다. 마치 수사 당국인 것 처럼 했기 때문. 인질 협상자가 나서 "이 아이는 천사에요"라고 얘기했지만 역시 해결하지 못했다. 이 남성을 아까 전에는 100% 인정 안해주다가 반대로 100% 인정해주는 실수를 범했다. 이 남성은 자신보다 경찰 측이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인지하게 된 것이다.

이 남성은 경찰 측이 그의 입장을 이해하자 협상에 접근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3분 뒤 천천히 문을 열고 나왔다. 긴장 관계에선 상대방을 제대로 인정해줘야 한다.

2. 어토노미(Autonomy), 자율성이다. 상대방이 내게 강요를 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협력하기 싫어진다. 상대방이 나의 자율성을 저해하면 나도 그 사람에게 협조할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이다. 협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최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한다.

3. 어필리에이션(Affiliation), 교감이다. 어떤 이들은 협상을 할 때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거나 대립적인 상태로 협상을 진행한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적을 동료로 바꿀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1998년 발생한 페루-에콰도르 간의 국경분쟁 해결 사건이다. 페루와 에콰도르는 오랫동안 국경을 둘러싼 충돌을 이어왔다. 1998년 마후아드 에콰도르 대통령은 당선 직후 페루와의 평화협정을 맺기로 결정하고 협상에 대한 조언을 얻기 위해 제게 전화를 걸어왔다. 난 마후아드 대통령에게 '먼저 조언을 구하라. 우리쪽 입장을 말하고 너희 입장은 뭐냐고 물어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마후아드 대통령은 이를 실행에 옮겼다.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에게 먼저 조언을 구하는 행동으로 두 정상은 적에서 동지로 돌아섰다. 양국 정상은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했고, 양국 국민들은 서로가 적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됐다. 10일 후 양국 간 구속력 있는 합의가 도출됐고 두 정상은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됐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한국에 와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린다. 브라운 총리 말씀 처럼 한국은 저에게도 큰 영감을 준다. 감사하다.

한경닷컴 김소정 기자 sojung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