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 교수와 경연…MB '친서민 중도'로 선회 결정적 계기
2009년 3월21일 오전 8시께 청와대 내 한옥인 상춘재. 봄 기운이 완연한 토요일 아침 이 대통령은 김우창 고려대 영문과 명예교수를 초청해 조찬 공부 모임을 가졌다. 청와대 참모들 중에서도 극소수에만 알려진 ‘경연(經筵)’이란 비공식 행사였다. 이날 초청된 김 교수는 2008년 봄 ‘광우병 파동’ 당시 언론 기고에서 촛불집회에 대해 “경제 일변도의, 부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것으로 보이는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깔려 있다”고 지적할 정도로 MB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석학이었다.

김우창 교수와 경연…MB '친서민 중도'로 선회 결정적 계기
박형준 홍보기획관과 정용화 연설기록비서관이 배석한 이날 경연에서 비교문학 전문가인 김 교수는 자본주의 윤리 문제를 거론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이번 위기는 정의와 도덕, 윤리 문제를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 전 세계적으로 윤리 문제가 다시 대두할 것이다.”

박형준의 회고. “이 대통령은 이날 경연을 통해 본인의 인식과 김 교수의 시대적 통찰이 일치한다는 것을 느꼈다. 또 보수와 진보라는 양 극단의 이념적 대립을 탈피해 중도세력을 중심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대통령은 이때부터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경제정책을 깊이 있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세 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날 경연은 이 대통령이 ‘MB노믹스’의 노선을 ‘친서민 중도실용’으로 전환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게 청와대 참모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후 ‘친서민 중도실용’은 ‘동반성장’ ‘공정사회’ ‘공생발전’ 등 MB노믹스의 주요 국정 화두로 진화한다.

○‘서민을 따뜻하게’ 과천청사에 걸려

이 대통령은 2009년 6월22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사회 전체가 건강해지려면 중도가 강화돼야 한다”며 ‘중도 강화론’을 처음 언급했다. 이는 그해 8월 광복절 경축사에서 구체화된다. “중도(中道)는 국가 발전이 국민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위민(爲民)의 국정철학’입니다. 실용은 국민의 삶과 괴리된 관념과 구호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며, 중도를 실현하는 방법론입니다.” ‘중도실용’이라는 새로운 아젠다를 던지며 집권 2년차 국정 운영의 대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이때부터 ‘친서민 중도실용’은 MB노믹스의 궤도 수정을 상징하는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MB노믹스가 대기업 중심의 수출 드라이브를 통한 우파 정책에서 서민 중심의 중도주의 정책 기조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곧바로 ‘서민을 따뜻하게, 중산층을 두텁게’라는 캐치프레이즈 현판이 과천정부청사 1동 건물에 내걸렸다. 이 현판은 아직까지 붙어 있다.

다시 박형준의 증언. “2008년 9월 리먼 사태가 없었다면 MB노믹스는 성장과 발전 중심으로 계속 갔을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중산층 붕괴로 이어지면서 정책의 우선 순위를 바꿔야 한다는 인식 전환이 내부에서 생겼다.”

○2010년엔 ‘공정사회론’ 대두

궤도를 바꾼 MB노믹스는 2010년 광복절 경축사에선 ‘공정사회’란 화두를 낳았다. 공정사회가 나온 데는 임태희 대통령실장의 역할이 컸다. 그해 7월19일 임 실장이 취임했을 땐 광복절 경축사 초안이 이미 마련된 뒤였다. 임태희의 증언. “경축사 초안의 내용은 훌륭했는데, 뭐랄까 허전했다. 대통령은 비전이나 가치, 철학적 기조에 대해 얘기를 해야 하는데 그게 빠져 있었다. 곧바로 대통령에게 ‘경제의 공정성’이란 가치를 제시하자고 건의했다. ”

이 대통령은 흔쾌히 “경축사 초안을 다시 정리해보라”고 지시했다. 이때부터 임 실장과 김두우 메시지기획관, 김상협 미래기획비서관 등이 투입돼 경축사 수정작업을 벌였다. 그 결과 경축사에는 “공정사회는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되,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지는 사회입니다. 공정한 사회야말로 대한민국 선진화의 윤리적, 실천적 인프라입니다”라는 문구가 포함됐다.

이후 대학등록금 지원(든든학자금), 서민주택 마련(보금자리주택) 등 전 부처 차원에서 추진한 공정사회의 구체적 실천방안들이 쏟아졌다. 같은 해 10월엔 대·중소기업 상생정책을 위한 동반성장위원회까지 출범했다.

○생태계 개념의 ‘공생발전’으로 진화

중도실용의 2011년 광복절 경축사 버전은 ‘공생발전’이었다. 이 화두도 8·15를 열흘 남짓 앞두고 탄생했다. 이 대통령은 그해 8월3일부터 4박5일간 경남 진해 앞바다의 저도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대통령의 여름휴가엔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 박형준 사회특보, 이동관 언론특보, 박태호 서울대 교수 등이 함께 갔다. 이 대통령은 휴가지에서 동행한 참모들과 광복절 경축사에 집권 4년차 국정 운영의 메시지로 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토론했다.

박형준의 증언. “경제시스템의 영속성을 위한 조건으로 발전의 개념을 담아야 한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분배주의나 포퓰리즘을 넘어 시스템을 유지하고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대립적 가치를 넘어서는, 지속적인 발전의 개념을 담아내야 한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장시간 토론 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공생’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 말에 ‘생태(eco) 시스템’의 개념이 접목되면서 ‘공생발전’이란 단어가 탄생했다.

이 토론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의 산업생태계태스크포스(TF)가 작성한 보고서가 밑자료로 활용됐다. 재밌는 건 이 보고서가 안철수 당시 안랩 이사회 의장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는 것.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증언. “공생발전론의 토대가 된 산업생태계태스크포스의 보고서는 2008년부터 미래기획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했던 안 의장의 산업생태계론을 참고한 것이었다.”

이 대통령은 여름휴가를 다녀온 지 열흘 뒤 열린 광복절 기념식에서 ‘공생발전’을 “성장과 삶의 질 향상, 경제발전과 사회통합, 국가의 발전과 개인의 발전이 함께 가는 새로운 발전체계를 만드는 일”이라며 임기 말 국정운영 방향으로 공식화했다. 이는 2012년 1월 대·중소기업상생법의 개정을 통해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과세, 재래시장 보호와 대형마트의 휴일영업 규제 등으로 구체화된다.

특별취재팀 차병석 정치부 차장(팀장), 이심기 경제부 차장, 서욱진 산업부 차장, 류시훈 금융부 기자 mbnomic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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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유교의 이상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임금에게 경전을 강의하던 제도. 매일 아침 강의를 실시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경연을 담당하던 홍문관원 외에 대신 2~3명과 승지 1명, 사헌부와 사간원이 교대로 번갈아 참석하면서 이후 정책협의기구로 발전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2008년 광우병 촛불사태 이후 소통 강화를 위해 각 분야의 원로와 석학을 청와대로 불러 의견을 듣고 토론하는 비공식 공부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은 대국민 소통 강화를 위해 신설된 홍보기획관에 취임한 박형준 전 의원이 주도했고, 모임 이름을 ‘경연’으로 불렀다.

주로 한 달에 평균 두 차례 정도 토요일 오전 조찬이나 오찬을 겸해 청와대 안에 있는 전통 한옥인 상춘재에서 열렸다. 철저한 비공개 일정이어서 청와대 참모들 중에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2008년 6월부터 시작된 이 경연은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와 MB노믹스의 방향 전환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