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민 감독 "상상 못할 신선한 유머·이병헌의 연기력…흥행 비결이죠 "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흥행가도를 질주하고 있다. 19일 현재 관객 970만명을 넘어 이번 주말에 1000만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지워진 15일간의 광해군 행적을 이야기로 꾸며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암살과 역모 위협에 시달리던 광해(이병헌)를 위해 도승지 허균(류승룡)이 광해와 닮은 만담꾼 하선(이병헌)에게 보름 동안 왕 노릇을 대신하도록 시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연출자는 추창민 감독(46)이다. ‘마파도’(2005) ‘사랑을 놓치다’(2006)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를 포함, 4편의 연출작 중 ‘사랑을 놓치다’를 제외한 3편을 성공시킨 흥행사다. 한국 영화 사상 7번째로 관객 수 1000만명 감독 대열에 합류할 추 감독을 서울 사간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다른 1000만 관객 영화들과의 차이점은.

“다른 영화들은 성수기인 여름이나 겨울방학 시즌에 개봉했다. ‘광해’는 비수기인 9월과 10월에 상영한 영화로는 처음으로 1000만명을 넘을 전망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5분의 1이 봤다는 것은 40대 이상이 많이 찾았다는 의미다.”

▶흥행 요인은.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든 영화여서 경쾌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유머가 주효했다. 코미디란 원래 감독보다 배우 역할이 큰데, 이병헌이 그 역할을 잘 수행했다. 현장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연기를 잘했다. 그는 도입부에 나오는 하선의 광대놀음을 가장 나중에 찍자고 제안했다. 영화를 촬영하면서 춤과 소리를 충분히 몸에 익힌 뒤 그 장면을 연기하겠다는 의도였고 그대로 적중했다.”

▶가짜 왕이 용변을 보는 ‘매화틀’ 장면에서 폭소가 터진다.

“상상을 벗어난 의외성이 튀어나왔을 때 웃음이 커지는 법이다. 이 장면의 의외성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왕이 용변을 보는 모습을 많은 궁녀들이 지켜보면서 일제히 ‘경하드리옵니다’라고 말하도록 했다.”

▶왕이 대들보에 머리를 부딪혀 쓰러지는 장면도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그 장면을 좋아한다. 하선과 관객이 잔뜩 긴장해 있다가 한순간에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해줬다.”

▶왕이 된 ‘하선’이 벼슬아치들에게 호통을 친다.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고 대동법에 반대하는 벼슬아치들의 모습에서는 정치적인 메시지가 읽힌다.

“정치적 메시지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 드러내놓고 가르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했다. 이 시나리오를 보고 좋았던 것은 ‘하선’이 분노하는 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분노와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왕의 침실이 유난히 넓어 보인다.

“기존 사극에서는 왕이 거처하는 공간이 너무 좁게 표현됐다. 왕의 권위에 맞게 침실이나 어전이 커야 한다고 믿었다. 왕의 권위를 표현하기 위해 종묘를 가봤더니 숨이 탁 막힐 정도로 압도됐다. 그 이미지를 빌려와 왕이 거처하는 내부 공간 세트를 짓고 실제보다 확장해 보여줬다. 또 왕의 권위를 위해 의상감독에게는 최대한 고급 원단으로 옷을 만들도록 했다.”

▶전작들보다 훨씬 매끄럽다.

“예산이 넉넉했기 때문이다. (순제작비 63억원, 배급·마케팅비 30억원 등 총제작비 93억원) 3개월20일간 촬영하는 동안 모든 장면에 두 개의 카메라를 사용했다. 미술에도 신경썼다. 60인조 오케스트라를 동원했다. 전작들은 예산이 적어 한 대의 카메라로 짧은 시간 내에 마무리해야 했다.”

▶표절 의혹이 제기됐다.

“CJ엔터테인먼트가 3년 전부터 시나리오를 기획, 개발해 어느 정도 틀이 잡힌 상태에서 연출을 의뢰받았다. 황조윤 작가가 쓴 시나리오 초고를 내가 일부 각색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영화 ‘데이브’를 봤더니 유사한 점이 있었다. 내 나름대로 연출하기로 했다. 그 영화의 컷을 그대로 가져오면 돌을 맞아야 할 것이다. 완성작에 대한 칭찬도, 비판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전작 ‘마파도’와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노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흥행에 성공했다.

“전형적인 노인이 아니다. 젊은 사람 같은 노인을 그렸다. ‘마파도’에서 순박한 할머니들은 외부의 강한 적들에게 젊은 사람처럼 맞대결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이순재 씨는 ‘사랑스런 젊은 오빠’다. 그들의 로맨스도 10대 소년, 소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몸만 늙었을 뿐 우리와 똑같이 생각하고 사랑한다. 금기시되던 노인들을 앞세워 흥행에 성공한 덕분에 상업영화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설경구와 송윤아가 주연한 멜로 ‘사랑을 놓치다’는 흥행에 실패했다.

“30초만 안 보면 재미가 없어지는, 호흡이 느린 영화였다. 관객들의 집중력을 요구했다. 알콩달콩한 에피소드를 좀 더 많이 넣고, 관습적으로 풀어냈어야 상업성이 강화됐을 것이다. 실패를 통해 많이 배운 영화였다.”

▶한국 영화들의 완성도가 높아졌다.

“영화시장의 거품이 빠지면서 검증시스템이 철저해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시나리오가 부실해도 배우가 좋거나, 인맥을 통해 자본을 조달하면 제작됐다. 이제는 모든 요소들이 평균 이상 돼야 촬영에 들어간다. 시나리오는 정교해졌고 스태프에 대한 검증도 철저해졌다. 감독이 양적으로 줄었지만, 살아남은 감독의 질적 수준은 높아졌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