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이어진 내수주와 중소형주 강세 현상이 약해지면서 대형주에 대한 관심이 살아나고 있다.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매력이 높아진 데다 최근 G2(미국 중국) 경기지표가 호조를 보이고 있어 대형주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고 있어 대형주의 투자 매력은 제한적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업종대표주, 저평가 매력

17일 코스피지수는 0.70%(13.61포인트) 오른 1955.15로 장을 마감했다. 그동안 침체에 빠졌던 업종대표주들이 전날에 이어 강세를 보인 덕분이다. LG화학(2.37%) 한국전력(2.15%) 현대중공업(2.01%) SK하이닉스(2.84%) SK이노베이션(3.25%) 등이 2% 이상 오르는 등 시가총액 상위 20개 종목 중 3개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상승하거나 보합이었다.

전지원 키움증권 연구원은 “연기금이 대형주 저가 매수에 나서면서 대형주 중심 으로 상승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연기금은 지난 16일과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각각 733억원과 810억원을 순매수했다. 이 중 656억원과 654억원이 업종대표주를 비롯한 대형주에 집중됐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제의 가장 큰 두 축인 미국과 중국의 경기 회복이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에 우량 대형주의 투자 매력이 높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10월 전미주택건설협회(NAHB) 주택시장지수가 41로 2006년 6월 이후 최고치를 보였다.

중국도 9월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9.9% 증가한 데 이어 광의통화(M2) 증가율이 14.8%로 예상치를 크게 웃돌았다. 김낙원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경기선행지수와 통화 증가율이 동반 상승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며 “중국 관련 자본재(철강 화학 조선 기계) 가운데 우량주를 저점 매수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지난 3개월간 대형주들이 시장에서 소외되면서 저평가 매력이 높아진 점도 긍정적이다. 특히 삼성전자현대차는 이익은 증가하는데 주가는 제자리에 머물면서 주가수익비율(PER)이 역대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증권사들의 올 순이익 전망치 평균으로 계산한 현대차의 PER은 5.6배로, 최근 4년간 평균(9.5배)은 물론 역사적 하단인 5배 근처에 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는 과거 PER 6배 이하로 떨어지면 어김없이 반등했다”며 “3분기 실적을 최악의 상황으로 가정해도 지금 주가는 과도한 저평가 상태”라고 진단했다. 그는 다만 유력 대선 후보들이 경제민주화를 강조하고 있어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투자심리는 악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삼성전자는 현재 PER이 8.6배다. 최근 평균(12.9%)을 크게 밑돌 뿐 아니라 역사적 하단(8배)에 가깝다는 평가다. 높은 휴대폰 의존도와 애플 소송 문제 등이 결부되면서 주가가 힘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 둔화 속에서도 시장지배력을 높여가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주가 할인폭은 지나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대형주 논란은 계속

대형주의 주가가 싼 것은 사실이지만 저평가 상태가 단기간에 해소되긴 어렵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경제분석기관들이 내년 각국의 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수출주는 할인 거래되고, 내수주는 이익이 썩 좋지 않아도 할증 거래되는 경향이 있다”며 “글로벌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전망도 나오는 만큼 이 같은 현상은 앞으로 1~2년간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오승훈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실적 개선을 이뤄내고 있지만 시장의 관심은 그보다 ‘어닝 서프라이즈를 계속 낼 수 있을까’로 옮겨가고 있다”며 “이익 추정치가 앞으로 계속해서 상향 조정되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지금은 시가총액 규모나 밸류에이션으로 투자 기준을 정하기 어려운 시기”라며 “시대의 트렌드 변화를 선도하는 산업과 종목을 찾아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