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프레젠테이션, 월드 시네마 반갑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 즐거움 중 하나는 세계적인 거장들의 화제작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거장들의 신작이나 화제작, 세계 최초 공개작을 선보이는 ‘갈라 프레젠테이션’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모두 7편. 이 가운데 한국의 중견 감독들의 신작이 5편이나 포함돼 있다. 갈라 프레젠테이션 작품들은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대중성 있는 유명 감독들의 작품 가운데 선발한다.

우선 1980~199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했던 박철수 감독의 신작이 소개된다. 중견 소설가 권지예의 동명 단편소설을 영화화한 박 감독의 ‘B·E·D’는 침대를 매개로 인간의 성적 욕망을 감각적으로 파헤친다. ‘사랑이 허기라면 섹스는 일종의 음식’이라는 원작자의 문제의식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작품이다.

올해 초 ‘부러진 화살’로 사회적 이슈를 만들었던 정지영 감독은 ‘남영동 1985’로 다시 한번 사회파 감독의 면모를 선보인다. 영화는 고문이 어떻게 인간의 육체만 아니라 영혼을 파괴시키는지를 정공법으로 보여주고 들려준다.

‘손톱’ ‘올가미’ 등 스릴러라는 한우물만 파온 김성홍 감독의 신작 ‘닥터’는 성형강국 대한민국에 전하는 통렬한 보고서라 할 수 있다. 사이코패스인 한 성형전문의를 축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며 가수이자 배우인 김창완의 야누스적 인물 연기가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중국 작품으로 돌아온 허진호 감독의 ‘위험한 관계’는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원작소설을 영화로 옮긴 것으로 장동건, 장쯔이, 장바이즈가 주연을 맡아 관심을 모은다.

아시아에서는 현재 정치적 이유로 망명생활 중인 이란의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정원사’와 준 망명 상태인 이란의 바흐만고바디 감독의 ‘코뿔소의 계절’이 부산을 찾는다.

영화 ‘정원사’에서는 마흐말바프와 그의 아들 메이삼이 오로지 평화를 강조하는 종교 바하이의 본거지인 이스라엘의 하이파를 찾는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으며, 아버지와 아들은 각자의 카메라로 상대를 찍으면서 대화를 나눈다. 서로 극명하게 엇갈리는 생각은 세대 간의 간극을 표현한다.

부산국제영화제 섹션 중 ‘월드 시네마’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동시대를 함께 호흡하는 비아시아권의 다양한 영화를 음미할 수 있어서다. 또 칸과 베니스, 베를린 등 세계 3대 영화제를 포함한 다양한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영화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월드 시네마’는 45개국에서 온 75편으로 진수성찬을 차렸다. 눈에 띄는 지역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신작이 몰려 있는 유럽 영화다. 세계 3대 영화제에 소개됐거나 수상한 영화 중 미하엘 하네케의 ‘아무르’, 마테오 가로네의 ‘리얼리티’, 토마스 빈터베르크의 ‘더 헌트’, 타비아니 형제의 ‘시저는 죽어야 한다’, 크리스티안 펫졸
트의 ‘바바라’를 비롯해 얀 트로엘, 마르코 벨로키오, 켄 로치, 폴커 슐뢴도르프, 올리비에 아사야스, 크리 스티안 문쥬 등 이름만 들어도 기대되는 감독들의 신작이 기다리고 있다.

북미권 영화들 중에는 감독으로도 명성을 떨치고 있는 벤 애플렉의 신작 ‘아르고’가 눈에 띈다. 그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아르고’는 얼마 전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후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이란혁명이 정점에 이를 무렵 여섯 명의 미 대사관 직원을 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중남미 영화도 놓치면 안 된다. ‘천국에 간 비올레타’(칠레)와 독특한 서부극 ‘소금’(칠레) ‘해변’(콜롬비아) ‘소피아와 고집 센 남편’(콜롬비아) 등이 기대작이다.

아프리카와 대양주에서는 신진 감독들의 힘이 느껴지는 ‘신의 전사들’(모로코)과 ‘나이로비 아이들’(케냐) ‘원단가게’(남아공) ‘로어’(오스트레일리아) 등이 초청됐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