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해외기업 상장을 유치하기 위해 최근 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기대와 달리 한국 증시 상장에 대부분 기업들이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코카콜라나 IBM 같은 세계적 기업을 한국 증시에 상장시키겠다”던 김봉수 거래소 이사장의 임기가 연말까지로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상장이 가시화된 글로벌 기업은 단 한곳도 없다.

거래소의 당초 밑그림은 단순했다. 원주(原株) 상장을 시도해보다가 안 되면 주식예탁증서(DR) 형태로 2차, 3차 상장을 유도하면 된다는 계산이었다. 글로벌 기업은 대부분 자국 증시에 상장돼 있지만 자금조달처 다변화와 외국인 투자자들의 요구 등을 감안해 미국이나 유럽, 홍콩 등에 DR 형태로 추가 상장한 경우가 많다. 그런 만큼 거래소가 이런 전략을 취하는 건 무리가 아닌듯 보였다.

그러나 아니었다. 거래소 예상과 달리 글로벌 기업은커녕, ‘그저 그런’ 외국기업조차도 한국 증시에 별 관심이 없다고 한다. 지난 5년간 한국 증시에 상장한 20개 외국 기업들이 주가 하락과 투자자들의 외면으로 ‘애물단지’로 전락한 탓이다.

더욱이 한국은 미국, 유럽은 물론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 아시아권 시장에 비해서도 매력이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시장 전반의 주가(밸류에이션)가 낮고 상장 절차도 비교적 까다롭기 때문이다. 이런 시장에 와 봐야 상장의 주된 목적인 자금 조달과 이미지 제고 등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글로벌 기업은 거래소 관계자들의 방문 자체를 반기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실의 높은 ‘벽’ 앞에 가로막힌 거래소는 최근 터키와 그리스, 카자흐스탄 등 제 3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보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장에 큰 관심을 보였던 이스탄불 국제공항 운영업체 TAV와 터키 선두권 은행인 가란티은행조차 대주주 변경과 주식시장 악화 등을 이유로 차일피일 의사결정을 미루고 있다.

그런데도 거래소는 해외기업 유치에만 매달려 있다. 거래소의 국제화를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차라리 그런 노력을 경쟁력 있는 국내 중소기업에 쏟아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어려워하는 기업들에 도움을 주면 어떨까.

안재광 증권부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