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 교실의 빈 나무의자들이 카메라, 돌, 화병, 마천루와 어우러져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 위로 잔잔한 빛과 색감이 고요와 평화를 수놓는다.

중견화가 고영훈 이석주 주태석 씨와 함께 극사실주의 회화 4인방으로 꼽히는 지석철 씨(59·홍익대 교수·사진)가 10~25일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개인전을 펼친다. 의자와 일상 풍경을 사진처럼 세밀하게 그려낸 근작 20여점을 선보인다. 현실과 비현실, 긍정과 부정의 상반된 개념들을 하나의 화면 위에 병치시켜 자유로운 희망의 세계를 추구한 작품들이다.

그동안 망망대해와 백사장, 고물자동차, 버려진 돌, 낙엽 등을 작은 의자와 한 화면에 결합시켰던 그가 우리 주변의 물건들을 그 자리에 놓아 더욱 눈길을 끈다.

1982년 파리비엔날레에 처음 빈 의자를 출품했던 그의 작품은 르네 마그리트 등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즐겼던 데페이즈망(depaysement·엉뚱한 결합) 기법으로 연출한 사진 같다. 친숙한 요소들을 동일한 화면에 결합시키거나 특정 사물을 전혀 엉뚱한 환경에 놓아 시각적 충격과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인공 조명처럼 느껴지는 빛을 살려내면서 사라진 시간과 공간을 실제처럼 표현한다.

그는 “클로즈업한 것이 실제 현실이라면 미니 의자는 관념적으로 만든 현실”이라며 “이질적인 두 요소를 대비시킴으로써 드라마틱한 긴장감을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의자는 지금은 떠나고 없는 시간과 추억으로 저장된 존재감을 상징하는 기호입니다. 오랜 시간 이끼가 낀 과거의 흔적으로 읽혀지고 다가가기를 원했죠. 눈과 손이 옮기는 정치(精緻)한 묘사력은 그저 껍떼기에 불과할 뿐, 대상과 이미지가 어떻게 각색되고 연출되었는가에 미학의 의미를 두고 싶었습니다.”

그는 “관람객들이 제 그림을 보고 지나간 시간과 만남의 세월을 따스하게 되새기고 꿈과 희망을 새로 건질 수 있기를 바란다”며 “지금까지 작업한 모든 의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설치·영상 작업으로 제작을 매듭지으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02)732-355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