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가 정치 쟁점화되고 있는 요즘 차세대 블루오션이라고 하는 해양플랜트 산업에서 오히려 양극화를 조장하는 일이 벌어져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정부는 앞으로 6년간 수심 3000m 심해저용 해양플랜트 원천기술과 응용기술을 개발하는 데 정부지원금 822억원을 책정하고 대기업 컨소시엄과 중소기업 컨소시엄에 경쟁을 시켰다. 결론은 대기업 컨소시엄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났지만 이는 차라리 동반성장의 ‘윈-윈 전략’을 썼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국내 해양플랜트 산업은 대·중기를 막론하고 3000m는커녕 300m 수심에서도 제1과제(해저종합엔지니어링), 제2과제(해상 패키지), 제3과제(해저 기자재 제작), 제4과제(해저설치)를 하는 회사가 전무한 실정이다. 현재 전 세계 심해유전 생산기록도 2300m가 한계다. 한국에서는 동해에서 가스를 채굴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해양플랜트 산업 활동이 전부 해외에서 이뤄지고 있다. 돈을 가지고 있는 메이저 석유회사들에 해양플랜트 시설을 팔아먹으려면 이들의 눈에 들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심해 해양플랜트 시설의 제작 경험이 전무하다. 따라서 5년 내에 이 산업에서 먹거리를 창출하려면 과제별로 대규모 투자와 함께 외국전문회사와 인수·합병(M&A) 또는 합작법인을 만들어 3~4년 공동운용 경험을 쌓아야 겨우 메이저 석유회사에 납품할 수 있다.

과거 30년간 현대, 삼성, 대우 등 국내 3대 조선소는 시추선, 대형 FPSO(부동식 생산저장 해역설비) 등 많은 해양플랜트를 제작해 왔지만 기본·상세 설계와 기자재는 외국전문회사에 의존하고 국내 중소기업의 기자재 개발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 아직도 기자재 국산화율이 20%를 밑돌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외국전문회사와 협조, 기자재를 개발하고 먹거리 창출과 시장개척도 함께해야 한다. 또 대기업에서 수익성이 떨어져 하지 않고 있는 중소 FPSO 국제 입찰에 참여, 자체 실수요자를 창출하는 것이 급선무다. 싱가포르 및 말레이시아 회사들이 많이 하고 있는 중소 FPSO 개조 공사에도 참여해야 한다. 외국에서도 해양플랜트 핵심 기자재 분야에서는 그 다양성이나 세심한 전문성 때문에 중소기업들이 기술개발이나 제작면에서 더 경쟁력이 있음을 인정한다. 이에 따라 외국의 대기업들은 그 핵심 기자재를 중소기업으로부터 공급받고 대기업 스스로는 EPCIC(설계, 구매, 제작, 운송, 설치)에 몰두해 매출을 올리고 있다.

심해 유전 개발 경험이 없는 국내 회사들이 유일하고 확실하게 심해에서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은 외국전문회사와 협조, 석유 메이저들을 함께 공략하는 것이다. 물론 외국회사에 너무 의존해 기술종속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도 초창기에는 영국의 글래스고 조선소에 기술자를 파견, 기술을 배우고 설계도면도 사다가 오늘날 청출어람(靑出於藍)으로 세계 제1의 조선소로 성장하지 않았는가?

대기업 컨소시엄이 제안한 국내 독자개발 전략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나, 먹거리 창출 면에서는 현실성이 없다. 대기업이 외국전문회사의 협조를 구하는 것은 부메랑 효과 때문에 쉽지 않다는 것이 지금까지 산업 현장에서의 경험이다. 따라서 많은 자금이 소요되는 엔지니어링과 설치분야는 대기업이 맡고 해상·해저 기자재 개발은 중소기업이 맡아 투트랙 전략을 쓰는 것이 현실적 접근이고 그것이 동반성장의 길이다.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배정된 정부예산을 대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배분해 쓰고 여러 하청업체를 형식적으로 거느리는 것은 실질적인 산업육성도 안되고 예산만 낭비할 뿐이다. 이 정도 정부예산을 여러 대기업에 분배해봐야 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공정 행위를 감시해야 할 정부기관에서조차 해당부서에 일을 떠넘기고 마는 형편이니 행정의 역주행이라 할 만하다. 동반성장이나 경제민주화는 구호로 될 일이 아니다. 산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이해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안충승 < 한국해양대 석좌교수·해양공학 daniel_csah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