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주목하는 1990년대 이후 서정시의 중요한 시적 대상은 ‘자연’과 ‘여성’이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시적 주체의 목소리나 상상력이 다양하게 개화했다기보다는 탈이념적·탈근대적 열정을 섬세하게 형상화했다는 게 특징인데, 이 때문에 근대적 사유에서는 외부에 머물러 있던 ‘자연’과 ‘여성’이 1990년대 이후 중요한 시적 소재로 자리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연과 여성을 노래한 시의 의미와 이들 시의 가능성을 진단하면서 “생태시가 계몽적 시선을 갖거나 문명과 대립되는 지점에 자연을 놓고 이를 숭고한 아름다움으로만 상상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철저한 시적 성찰을 통해서만 생명의 이미지가 인간을 위한 미래의 미학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여성시에 대해서도 “여성들의 가치와 정체성을 확보하고 여성들의 삶의 방향을 총체적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여성이라는 소재를 유행으로 다루거나 반여성적인 것에 순종하는 자세는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의 전반적인 현대시도 살핀다. ‘민중 정서’를 기반으로 원초적 생명력을 회복하고자 했던 백석과 근대가 이식되는 시기 저항적 실천을 노래했던 이육사 등 초기 현대시, 1980년대 이후 북한 시와 우리 시 비교, 황동규 문정희 송재학 고두현 이윤학 등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들의 시세계를 분석한 개별 시인론 등이 눈길을 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