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국인 선원을 고용한 것처럼 선원 명부를 조작해 정부보조금 16억여원을 가로챈 해운사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정부가 내국인 선원을 태우는 조건으로 국가필수국제선박에 지급하는 보조금 규정을 어기고도 이행한 것처럼 속여 16억7000여만원을 챙긴 혐의(국제선박등록법 위반 등)로 해운사 대표 성모씨(59) 등 10개 해운사 관계자 19명을 불구속입건했다고 27일 밝혔다. 경찰은 또 이들과 공모해 허위로 선원 명부를 만들고 관리한 선원 관리업체 대표 정모씨(54) 등 9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10개 해운사 중에는 국내 4위의 해운회사도 포함돼 있다.

국가필수국제선박은 전쟁 등 비상사태 때 군수물자 등을 수송하기 위해 선박 소유자의 신청을 받아 국토해양부 장관이 지정한다. 정부는 다만 내국인 일자리 확보를 위해 국가필수국제선박에 탑승하는 외국인선원 수를 일반 지정선박보다 2명 적은 6명으로 제한한다. 이때 외국인 선원보다 임금이 비싼 내국인 선원 2명 을 고용하는데 따른 임금 차액을 손실 보상금 명목으로 보조한다.

경찰에 따르면 적발된 해운사들은 출항할 때는 규정에 맞게 외국인선원을 6명만 태운뒤 외국 항만에 정박해서는 인건비가 싼 중국이나 동남아국가의 선원을 내국인 선원과 바꿔 태웠다. 국내로 귀항할 때는 다시 일본 등 가까운 항만에서 내국인선원으로 바꿔 태우는 수법으로 단속을 피했다. 이들은 이런 식으로 임금 관련 서류를 가짜로 꾸며 2007년부터 매년 1척당 평균 5000여만원의 손실 보상금을 챙겼다. 현재 88척의 선박이 국가필수국제선박으로 지정돼 있다. 이번에 적발된 선박들은 모두 18척이다.

경찰은 해운사들이 한번 출항하면 여러달 이후에나 귀항해 해운당국이 감독하기 힘든 국제선박의 특성을 악용했다고 설명했다. 당국이 손실보상금 지급 여부를 심사할 때 선원들의 출입국 자료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점도 이용됐다.

경찰 관계자는 “손실보상금 지급심사 시 해당 선박의 운항기록 및 선원명부뿐 아니라 선원들의 국내외 출입국 신고기록이나 급여기록 등 소명자료를 제출받아 검증하는 방안을 도입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동민 기자 @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