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9월26일 오후 3시50분

‘샐러리맨 신화는 무너지는 것인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외판원 출신으로 1980년 헤임인터내셔널이라는 작은 출판사를 설립한 뒤 32년 만에 계열사 14개, 매출 6조원 규모의 중견그룹을 일군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성공신화가 위협받고 있다.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와 부실 계열사인 극동건설이 26일 전격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한 데다 ‘그룹 리모델링’의 키를 쥐고 있던 코웨이 매각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구조조정 해법 왜 틀어졌나

윤 회장은 올해 2월 웅진코웨이 매각을 결정하면서 “태양광 사업과 건설 사업을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매년 2000억원 이상의 순익을 내는 알짜회사 코웨이를 1조2000억원에 팔아 그룹 자금난을 해소하면서 신성장 분야인 태양광과 건설에 대한 투자여력까지 챙기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룹의 캐시카우를 팔아 부실기업을 살리겠다는 ‘승부수’였다.

그러나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태양광과 건설업 업황이 유럽발 재정위기와 내수 위축 등으로 갈수록 악화됐다. 결국 윤 회장은 태양광 사업을 중단키로 결정했다. 태양광 분야 주력 계열사 중 하나인 웅진폴리실리콘을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내놓은 것. 매각 주관사로 우리투자증권을 선정했다.

극동건설도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총채무가 9000억원에 달하는 극동건설은 업황 위축으로 매출이 줄어드는 가운데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자 부담은 더 늘어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그룹 입장에선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었다. 그동안 웅진그룹은 극동건설 인수에 6600억원, 유동성 지원에 4000억원을 투자한 것을 빼고도 4000억원의 지급보증을 서줬다. 따라서 극동건설이 부도 처리될 경우 채권자들이 지급보증자인 웅진홀딩스에 채무이행을 요구, 웅진홀딩스도 위기에 몰릴 상황에 처했다.

웅진홀딩스의 자체 빚이 많다는 것도 문제였다. 웅진그룹이 건설과 태양광, 금융(서울저축은행 등)사업을 인수하면서 진 빚은 3조원이며 이 중 향후 1년 내 만기도래하는 채무만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웅진홀딩스 관계자는 “자칫 알짜회사인 웅진코웨이를 팔아 만든 돈을 빚을 갚는 데 다 써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내부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때문에 웅진그룹은 웅진코웨이 매각대금을 손에 쥐기 직전, 지주회사와 극동건설을 함께 법정관리로 보내 채권단을 위한 ‘빚잔치’를 피해 갔다는 해석이다.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모든 채권 채무가 동결되기 때문이다.

○웅진그룹의 마지막 카드는

웅진홀딩스 관계자는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갈 뿐 나머지 계열사들의 경영활동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정관리에 들어가지만 자산 매각 등의 계획만 잘 세워 이행하면 다른 계열사들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웅진에너지는 지난해 매출 3000억원에 영업익 200억원, 교육사업 담당인 웅진씽크빅은 매출 7700억원에 영업익 300억원, 폴리에스터 계열의 원면원사를 만드는 웅진케미칼 역시 매출 1조800억원에 영업익 110억원을 낸 알토란 같은 회사라는 게 그룹 측 설명이다.

그러나 금융권의 생각은 다르다. 다른 계열사의 실적이 아무리 좋아도 웅진홀딩스의 위기가 전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 전문가는 “웅진홀딩스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지주회사와 거래관계가 있는 계열사들의 우발 채무와 투자 규모 등이 문제가 될 것”이라며 “채권단에서 계열사들의 위험도를 판단해 자금 지원 중단이나 채권 회수에 나설 경우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웅진그룹의 운명이 이미 법원으로 넘어갔다고 보고 있다. 법정관리 인가 여부, 웅진이 마련한 회생계획안을 법원이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박수진/좌동욱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