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 발전은 오늘의 풍요한 물질문명을 가능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시시비비를 가리는 합리적 근거를 제공해 정의로운 사회를 가능하게 해주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밝혀내거나 또는 정반대로 범죄로부터 무관함을 밝혀내는 데 과학기술을 이용함으로써 안갯속에 묻혀 있던 진실이 햇빛 아래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필자는 인천시 남구청 고문변호사 시절 토지 사기꾼에게 넘어간 수봉공원을 되찾는 소송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이 소송은 남구 주민들은 물론 인천시민 모두가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그야말로 파장이 큰 공익소송이었다. 소송 쟁점은 토지 사기꾼이 증거로 제출한 주민등록표와 제적등본이 위조되었는지 여부였다. 사문서는 필적 감정이나 또는 인영 감정을 주로 해 진위를 가리기도 하나, 공문서는 일단 적법하게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공문서가 위조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결국 형사고소를 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주민등록표의 경우는 원본의 일부를 채취해 이화학적 검사를 한 결과 검사일자(2003년)로부터 5년 이내에 작성된 문서라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1968년 작성되었다고 기재된 것이 위조였음이 판명되었다.

제적등본의 경우는 복사용지에 작성한 것이었다. 복사기 제조회사의 설명에 의하면 복사 방법에 건식복사와 습식복사가 있는데 이 사건의 제적등본은 건식복사에 의한 것이고, 건식복사기는 우리나라에 1983년도에 최초로 도입됐으므로 1977년도에 작성한 것으로 기재된 이 사건 제적등본 또한 위조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토지사기꾼들은 결국 공문서위조죄로 구속되었고 수봉공원은 마침내 주민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민사소송이었지만 과학수사의 힘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과학수사 덕에 혐의를 벗은 사례도 있다. 2009년 12월17일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플로리다주 법원은 1974년 당시 열아홉 살이던 흑인 제임스 베인이 미성년자를 유괴, 성폭행한 혐의에 대해 종신형을 선고했으나 나중에 DNA 검사로 범인이 아님이 밝혀져 35년 만에 무죄로 석방했다고 한다. 그때까지 미국에서는 246명의 기결수가 DNA 증거를 통해 무죄로 석방되었다고 한다.

1985년께 본격화된 DNA 검사 방식은 이제 과학수사의 기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산가족 찾기, 친자 확인, 나아가 재난이나 대형사고 희생자들의 신원확인에까지 이용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응용은 인간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때에 우리나라에서는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걱정이 앞선다. 과학기술인들에 대한 지위와 대우가 향상되어 젊은이들이 앞 다투어 이공계를 지망하는 날이 하루 속히 돌아오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홍일표 < 국회의원(새누리당) 2008hip@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