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물류업체 M사를 운영하는 K사장은 2006년만 생각하면 지금도 억장이 무너진다. 아버지가 30여년간 피땀 흘려 일군 회사를 매각할 수밖에 없게 만든 엔화 대출과의 ‘잘못된 만남’이 뼈저리게 후회되기 때문이다. K사장이 당시 가업을 잇기 위해 대표이사로 취임했을 때만 해도 M사는 탄탄했다. 부채비율 0%, 100억원대 자산에 연 매출도 100억원 가까이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본이 잠식됐고 매출도 반토막 났다. 사장 등 고위 임원진은 월급을 받아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고통 분담에 앞장서기 위해 작년 말부터 월급을 자진 반납해서다. 그는 “2세가 경영하면 회사가 망한다는 소리가 내 얘기가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며 “엔화 대출과의 악연을 빨리 끊고 싶다”고 말했다.

K사장은 2006년 사업 확장을 위해 국내 모 시중은행에서 5억5800만엔을 빌렸다. 당시 환율(100엔당 823원)로 약 43억5000만원에 달하는 금액. 그러나 이후 엔화 가치가 고공행진을 거듭했고 그 사이 연 2%대였던 금리는 지난해 7%대로 올랐다. 은행이 가산금리를 적용했기 때문. 이로 인해 이자는 월 900만원 선에서 3000만원대로 세 배 이상 뛰었다. 지금까지 낸 이자만 16억원이 훌쩍 넘는다. 원금도 눈덩이처럼 불었다. 빌린 돈의 두 배가 조금 안 되는 81억원에 육박한다. 100엔당 원화 환율이 1400원대로 급등한 탓이다.

K사장은 “엔화 대출을 선택한 제게도 잘못은 있다”면서도 “은행이 화를 키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엔화 가치가 출렁일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원화 대출로 갈아타려는 것을 은행이 극구 말려 이 지경까지 왔다”며 “제때 갈아타기만 했어도 아버지 보기 민망한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천에 있는 또 다른 중소기업 L사의 B사장은 모 시중은행 지점장으로 있는 친동생과 아예 인연을 끊었다. 동생의 부탁으로 2007년 2억3000만엔을 빌린 게 화근이었다. 그는 “실적을 걱정하는 동생을 모른 체 할 수 없었던 데다 동생이 설마 안 좋은 상품을 추천할까 했지만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고 푸념했다. B사장은 원금 및 이자 상환 부담에 결국 지난해 부도를 맞았다.

인천 남동공단 중소기업들이 엔화대출 후폭풍으로 ‘도미노 부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2009년 1600원대까지 엔화환율이 급등했을 때도 버텼던 중소기업이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는 1400원대의 고환율세와 경기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줄줄이 부도위험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남동공단에서만 지난 4년여간 80여개사가 문을 닫은 것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2009년 현재 이 지역에서 엔화 대출을 쓴 기업(160개사) 2곳 중 1곳이 사라진 셈이다.

남동공단에서 설비업을 하는 C사장은 “폐업과 경매는 물론, 인근 업체 사장 2명은 이자 부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대출 상환일(11월)이 오는 게 너무 두렵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준 시중은행의 엔화 대출 잔액은 1조2000억엔에 달한다.

김병근/은정진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