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社1병영] 'ROTC 3기' 강국창 동국전자 회장, '꼴통병장' 조인트 깠던 패기로 회사 키워내
1963년도 학군단(ROTC·1971년까지는 학훈단으로 불림) 3학년 여름 방학. 충북 증평군 군부대(현재 37사단)에서 학군단 병영훈련을 받을 당시 ‘하이바’가 없는 알 철모를 쓰고 한 쪽발에는 군화를, 다른 발에는 검정고무신을 신고 완전 군장과 6·25전쟁 때 미군이 쓰던 무거운 소총(M1)을 메고서 연병장을 돌다 쓰러지곤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올해가 한국 나이로 70세인데, 학군단(연세대 전자공학과) 3기로 소대장을 맡았던 게 47년 전이다. 1965년도 대학 졸업과 함께 소위로 임관한 뒤 통신병과를 받아 대전통신학교에서 3개월간 훈련을 받고 전방 전투사단인 강원도 양구 21사단 사령부의 통신중대 무선 소대장으로 배치됐다.

소대장 때 가장 먼저 기억나는 것은 처음 당직사관을 맡았을 때 일석점호다. 중대원 모두 실내복만 입고 침상 끝에 서서 차렷자세로 정렬해 있었다. 그런데 한 소대원이 러닝셔츠 차림에 내무반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게 아닌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고참 병장이라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군율을 어겼다고 지적한 뒤 조인트를 수없이 까고 ‘팔굽혀 펴기’를 셀 수 없을 정도로 시키는 등 심하게 혼쭐을 냈다.

알고보니 그 고참병은 전과가 있는 사고뭉치에다 한 달 뒤 제대를 앞둔 터라 모든 군생활이 열외였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고참병은 교육훈련과 규칙적인 내무생활에서 제외시켜주는 것이 관례였다. 그 후 그 고참병은 제대할 때까지 열외가 없었으며 부대원들도 바짝 군기가 들어 전역 때까지 사고가 없었다.

또 부임 두 달째 되던 날 나이 많은 선임하사가 반말로 무시하는 듯한 언행을 하길래 그 즉시 철모로 선임하사 얼굴을 가격했다. 그 뒤 모든 선임하사들도 고분고분해졌다.

나는 2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소위로 제대했다. 학군단 1기생부터 3기생까지는 일명 ‘왕소위’로 제대했다. 4기부터는 군복무기간이 3개월 늘어나 중위 제대로 바뀌었다. 4기가 소위로 임관한 후 1년이 채 안 된 1968년 1월21일 북한 특수부대인 124군부대의 청와대 습격사건이 발생한 직후 학군장교 군복무가 연장됐기 때문이다.

나는 소대장 시절 익히고 경험했던 리더십과 절도있는 생활이 내 사업과 인생에 큰 밑거름이 됐다고 자부한다.

제대 후 동신화학에 나를 포함해 신입사원 35명이 입사했다. 항상 1순위로 진급해 입사 6년 만에 과장이 됐고 동남샤프로 회사를 옮긴 뒤에도 입사 4년 만에 기술개발부장에 올랐다.

1977년 퇴직 후 전공을 살려 냉장고와 세탁기의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동국전자(인천 남동공단)를 창업했다. 현재 중국 멕시코 등 국내외에 10개의 계열사를 두는 한편 제주도 서귀포 위미항 인근에는 ‘국내 10대 아름다운 코스’로 알려진 스프링데일 골프장과 리조트를 운영하는 중견 기업으로 사업을 키웠다. 골프장은 학군단 출신들에겐 준회원 대우를 해주고 있다.

지금도 ‘학훈 3기’ 동기 50여명과 한 달에 한 번씩 골프도 치고 회식도 하는 정기모임을 갖고 있다. 이 동기 중에 장군이 7명이 나왔고 보안사령관과 3군사령관 출신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