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자영업 시한폭탄' 째깍째깍대는데…
한국 근로자들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오랜 시간 일을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주당 44.6시간이라는데, OECD 비교대상국 30개국 가운데 꼴찌인 터키 다음이라고 한다.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다는 나라가 아직도 몸 때우기 식으로 일을 한다는 통계인데, 불편하기 짝이 없는 보도다.

G20 국가가 됐고, 대표기업들이 초우량기업으로 거듭나 세계를 누비고 있다. 급기야 국가신용등급마저 일본을 앞질렀는데 근로시간은 여전히 OECD 최하위권이다. 경제우등생 한국의 근로자들이 재정이 펑크난 그리스보다 더 장시간 근로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실 주말에도 일을 하는 회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 5일 근무제로 임금 근로자들은 대체로 주당 40시간이라는 법정 노동시간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러면 이토록 장시간 일을 하는 근로자는 과연 누구일까.

바로 비임금 근로자들, 그중에서도 영세 자영업자들이다. 근무시간이 따로 없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가게 문을 열어놓고 온 가족을 동원해도 공식통계상 월평균 소득이 150만원이 채 되지 않는 근로자들이다. 이런 자영업자들이 통계를 좌우할 정도로 많다는 것이 문제다. 지난 8월 말 기준으로 580만명, 여기에 무급가족종사자 132만명을 포함하면 모두 712만명에 이른다. 전체 근로자 가운데 28.7%, 말하자면 10명 가운데 3명은 자영업자라는 얘기다. 역시 OECD 최고 수준이다. 자영업자 비중이 10%도 되지 않는 선진국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한마디로 가장 좋지 않은 고용구조인 셈이다. 한국인의 근로시간과 생산성이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이유다.

매년 새로 진입하는 만큼 퇴출되는 것이 자영업자 수다. 준비 없이 뛰어들다 보니 블루오션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베이비부머들의 자영업 진출이 크게 늘면서 더욱 두드러진 현상이다. 도·소매업과 숙박·요식업 등 생활밀접형 창업이 주류를 이루는 이유다. 같은 자영업자가 최대 경쟁자다.

[김정호 칼럼] '자영업 시한폭탄' 째깍째깍대는데…
창업 자금은 모자라고, 수입은 기대에 못 미치고, 월세와 관리비 부담은 갈수록 커진다. 자영업 3년 생존율은 50%에도 못 미치고, 자영업 가계부채는 평균 1억원에 육박한다. 수입의 30%를 빚 갚는 데 털어넣어야 하는 게 이들의 현실이다. 게다가 내수시장은 침체 일로를 걷고 있다. 자기착취로 버티는 것도 이제 한계다. 시한폭탄이 째깍째깍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한국은행을 설득했다. 돈을 찍어 한계선상에 몰린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1조5000억원을 지원하는 비정상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시한폭탄의 시곗바늘을 잠시 되돌려 놓는 정도에 불과하다. 오히려 부실 자영업자들의 퇴출을 지연시켜 병을 키울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과잉 상태의 자영업자들을 어떻게 하면 임금 근로자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 하는 근본 대책에 대한 정부 차원의 논의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자영업자 문제를 경제적 약자와 강자라는 이분법적 논리로 풀려 했던 것이 이 정부다. 자영업자 수를 줄여가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은 채 기업형슈퍼마켓(SSM) 출점 규제, 대형마트 강제휴무제, 재벌빵집 퇴출 강요 등 반시장적 정책으로 오히려 임금 근로자들이 설 땅만 좁혀놓았다. 일자리 창출의 보고가 될 것이라던 서비스업 선진화 방안은 기득권 세력의 이기주의를 풀지 못해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그렇게 자영업 폭탄을 키워온 지난 5년이다.

새로운 5년을 맡겨달라는 대선 주자들이 모두 일자리 창출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하지만 이들이 내세운 정책도 포장만 다를 뿐, 모두 일자리 창출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표심을 얻겠다며 모두가 기업 때리기에 몰두하는데 어디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인지.

최근 방한한 세계적 석학 기 소르망이 이런 얘기를 했다. “후보들마다 일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하는데 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것이지, 정부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어떻게 혁신적인 기업의 수를 늘리고, 지원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억지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다.”

대선 후보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얘기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