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성난 중국에 당황한 일본
지난 13일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일본 외무장관과 모리모토 사토시(森本敏) 방위장관은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 호주에서 열리는 외교 및 국방장관 협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일본 정부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 조치를 내리고 이틀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 주변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중국 반응이 심상치 않은데 괜찮겠냐고. 그러나 겐바 장관은 “내가 없어도 대응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틀 뒤인 15일 아침. 겐바 장관은 남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서둘러 도쿄행 첫 비행기에 올랐다. 중국에서 대규모 반일시위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센카쿠 국유화의 파장이 이 정도로 커질 줄 일본 정부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센카쿠 국유화 논란은 지난 4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 도지사가 촉발했다.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센카쿠를 매입하겠다고 선언한 것. 중국이 발끈했다. 반일감정이 서서히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급기야 지난달엔 홍콩 시위대가 센카쿠에 상륙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한동안 손을 놓고 있던 일본 정부가 바빠졌다.

그러나 해결책은 엉뚱했다. 도쿄 도지사를 말리기는커녕 정부가 나서서 국유화 작업을 서둘렀다. 변명은 그럴싸했다. 극우주의자인 이시하라 도지사보다는 정부 차원에서 센카쿠열도를 관리하는 것이 중국의 반발 수위를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 내에서도 “별일 없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우세했다. 일본의 자기 중심적인 대처로 중국 내 반일감정은 결국 비등점을 넘어버렸다. 중국 현지의 일본 기업들은 반일 시위대의 타깃이 됐다. 약탈과 방화가 이어졌고, 문을 닫는 기업들이 급증했다.

작년 3월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 언론에는 ‘소테가이(想定外)’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상상을 넘어서는 일이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는 정부와 도쿄전력의 무책임을 비판할 때 자주 인용됐다. 요즘 들어 일본 신문과 방송에 다시 ‘소테가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지진은 자연재해였기에 그나마 예상 외였다는 변명이 통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한국 중국 등과 연이어 각을 세우고 있는 일본 정부의 극우적 태도는 명백히 ‘인재(人災)’다. 그래서 책임소재가 분명하다.

안재석 도쿄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