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 스님 딸 불필 스님 "큰스님을 한 번도 아버지라 못 불렀죠"
“큰스님은 아버지가 아니라 큰 스승이었습니다. 열일곱 살에 통영 안정사 천제굴에서 두 번째로 뵌 순간부터 그랬죠. 책에서는 아버지라는 표현을 여러 군데 썼지만 단 한 번도 아버지라 불러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스승으로서 제자가 공부할 수 있는 길은 활짝 열어주셨죠.”

조계종 전 종정 성철 스님(1912~1993)의 친딸이자 제자인 불필 스님(75)이 회고록 《영원에서 영원으로》(김영사)를 냈다. 불필 스님은 책 출간을 기념해 18일 오후 경남 합천 해인사 산내암자인 금강굴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출간 동기와 책에 담긴 내용 등을 설명했다.

1937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난 불필 스님은 1957년 경남 울주 석남사에서 인홍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전국 각지의 선방에서 참선수행으로 평생을 보냈다. 성철 스님이 그랬듯, 불필 스님도 “평생 숨어사는 도인이 되겠다”며 세속과는 거리를 두고 살아온 터라 이날 기자들과의 만남은 이례적인 자리였다. 회고록 출간도 세 번을 거절한 끝에 올해가 성철 스님 탄생 100주년이어서 집필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열세 살 때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던 삼촌과 함께 부산 기장군의 묘관음사로 큰스님을 처음 찾아갔는데 ‘가라, 가!’ 하고 소리를 지르시는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도 ‘삼촌, 집에 가자’며 돌아서버렸죠. 그때 아버지에 대한 환상과 그리움, 혈육으로서의 인연을 정리했어요. 지나고 보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때 다정하게 대했더라면 아버지에 대한 집착을 놓치 못했을 텐데 매정하게 대했기 때문에 모든 걸 바다에 묻고 돌아설 수 있었으니까요.”

책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가족사와 성철 스님과의 여러 일화도 담았다. 다섯 살 많았던 언니의 갑작스런 죽음과 이로 인해 생긴 생사의 의문, 생명의 덧없음을 뼈저리게 느꼈던 6·25 전쟁 체험, 아버지와의 만남과 출가 및 수행 과정, 어머니(일휴 스님)의 출가에 이르기까지 팔순을 바라보는 한 평생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해준다.

“진주사범학교 2학년 때 천제굴에서 두 번째로 큰스님을 뵈었을 때 이렇게 물으셨어요. 너는 왜 사느냐고요. ‘행복을 위해 산다’고 답하자 ‘행복에는 일시적인 행복과 영원한 행복이 있다’며 오욕락(식욕·색욕·재물욕·명예욕·권력욕)을 누리는 건 일시적인 행복이고 부처님처럼 수행해서 도를 깨치면 영원한 대자유인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죠.”

이날 만남은 불필 스님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 자리에서 성철 스님으로부터 화두를 받은 딸은 학교 공부보다 화두 드는 일에 매달렸다. 그러다 “부처님은 6년 만에 도를 깨쳤지만 나는 3년 만에 깨치고 돌아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그러나 깨달음의 길은 쉽지 않았고, 단거리 경주로 끝내려던 계획은 ‘장거리’ 경주로 바뀌었다.

회고록에서 특히 주목되는 건 성철 스님이 불필 스님에게 건네준 ‘법문노트’다. 성철 스님이 친필로 작성한 법문노트에는 수행자가 지켜야 할 ‘수도 8계’와 ‘12두타행(고행)’ 등 실질적인 지침이 담겨 있다.

해마다 빠짐없이 석남사 심검당에서 안거를 보내는 불필 스님은 지금도 스스로 되묻는다. “영원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이 삶에서 부끄럼 없이 공부에 충실했는가.” 그러면서 책의 말미에 성철 스님을 위해 ‘모양 없는’ 시비(詩碑)를 세웠다. 그 시비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입니다. 자기는 항상 행복과 영광에 넘쳐 있습니다. 극락과 천당은 꿈속의 잠꼬대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성철 스님이 1982년 부처님 오신 날에 내놨던 한글 법어다.

해인사=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