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공업고에 들어가 소프트웨어(SW) 전문가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15세 아들은 인문계 고교를 가라는 아버지를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했던가. “네 뜻이 정 그렇다면 그렇게 하거라. 이 아비는 언제나 네 편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꺾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이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막아주는 방풍 역할까지 해줬다. 그리고 꼭 10년이 흘렀다. 그 아들은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켰다. LG전자에서 안드로이드폰 웹브라우저 개발연구원이 돼 아버지를 감동시킨 것.

올 2월 입사해 LG전자 연수원인 ‘평택러닝센터’에서 연수 중이던 노영수 씨가 인터뷰를 위해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 왔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듯한 풋풋한 소년의 얼굴과 미소를 가진 그였지만 벌써 26세란다. 인터뷰는 한강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트윈타워 33층 ‘오아시스 캠프’에서 이뤄졌다. 원래는 사무실이었던 이곳은 임직원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마음껏 아이디어를 내고 브레인스토밍을 할 수 있도록 지난해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초등학교 5학년 ‘SW개발자 꿈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586컴퓨터를 사줬다. 전화모뎀을 통해 연결됐던 인터넷은 어린 소년에게 신기함 그 자체였다. 밤을 새워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웹서핑을 하면서 문득 홈페이지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었다. 서점에 가서 홈페이지를 만드는 책을 샀다.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컴퓨터와 책을 번갈아 보며 그대로 따라하길 수십번. 난생 처음으로 인터넷상에 홈페이지를 직접 만들었다. 또한 매달 PC잡지가 나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던 초등학교 6학년생은 이 잡지를 통해 몰랐던 컴퓨터의 또 다른 세계를 만났다.

“컴퓨터는 공부하면 할수록 흥미롭고 재미있었어요. ‘SW개발자’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지요. 내가 만든 게임이나 프로그램을 다른 사람이 보고 즐긴다니 너무 신기했어요.”

SW개발자의 꿈도 이때 생겼다. 그 꿈이 지금까지 노씨를 성장시켰고 움직이는 원동력이 됐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인 BASIC과 C언어를 독학했다.

“부모님이 학원을 많이 보내주셨는데 그 공부가 제겐 스트레스였어요. 하고 싶은 것은 컴퓨터였는데 학원에 앉아 있으려니 너무 힘들었죠. 수학은 재미있었는데, 사회는 18점을 받은 적도 있어요.ㅎㅎ”

광주전자공고 전기전자과에 들어간 노씨는 2학년 때 진가를 발휘했다. 정보기술 분야 광주기능대회에서 2등을 하고 광주 정보올림피아드에서 동상을 받은 것. 이런 경력을 인정받아 노씨는 조선대 컴퓨터공학과 수시에 합격, 계속 공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당당히 1등 거머쥔 공고·지방대 출신

대학 시절 스마트폰이 나오자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가 개발해 내놓은 앱 ‘쉐이크 콜’은 벌써 다운로드 100만건을 돌파했다. 휴대폰을 흔들어 통화하고 끄는 이 앱은 사용자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바쁠 땐 손가락을 밀어 통화하기도 힘들잖아요. 그런 불편함을 생각해 만든건데 사용자들의 ‘고맙다’는 댓글에 자신감을 얻었어요.”

지난해 대학 4학년 여름방학. 애플리케이션의 슈퍼스타K를 찾는 ‘슈퍼 앱 코리아’는 노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경진대회로 기억했다. 두 달간 진행된 이 대회는 지방 예선대회를 거쳐 서울 본선만 20여개팀이 경쟁했다.

“전국 각지의 쟁쟁한 SW개발자들과 합숙하면서 벌이는 아이디어 경쟁이 너무 즐겁고 좋았어요.” 이 대회를 통해 노씨는 ‘소셜데이팅, 1 대 1 강의마켓, 웃음소리 성격분석 앱’을 개발해 우수상을 받았다.

LG전자와의 인연은 우연이었다. LG전자와 평소 산학관계에 있던 권구락 고려대 교수가 조선대로 옮기면서 노씨를 알게 된 것. 이후 그의 탁월함을 눈여겨본 권 교수의 추천으로 LG전자에서 노씨를 인터뷰해 특별채용했다.

김윤흥 인사팀 차장은 “노영수 씨를 보면서 스펙보다 실력을 생각했어요. 노씨는 SW코딩(SW 프로그램 작업)에 열정을 지닌 인재였습니다. 현업에서도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라고 밝혔다.

프로그램 개발자에게 필요한 역량이 뭔지 물었다. 노씨는 “천부적인 재능보다 중요한 것은 그 분야에 대한 재미와 흥미”라며 “결국은 관심이 좋은 성과를 낳는 것

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씨는 자기소개서에서 “한번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1주일에 5시간 정도 잡니다. 머릿속엔 온통 그 생각으로 가득 차 오히려 잠자는 게 아깝다는 느낌이 들 정도”라고 표현했다.

최근 노씨는 LG전자 신입SW교육 때 당당히 1등을 거머쥐었다. 공고와 지방대를 나온 그가 서울의 명문 공대 출신들을 제치고 최고 성적을 거둔 것. 이번주부터 그는 상반기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7주 동안 SW 신입과정 강사로 서게 된다.

그에게 소감을 묻자 “LG전자가 1등 휴대폰을 만드는 데 작은 밀알이 되고 싶을 뿐”이라고 답했다. 실력과 열정을 지닌 노씨 같은 인재를 품은 LG전자의 휴대폰 1등을 향한 고지가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나중에 이력서를 통해 안 것이지만 그의 좌우명은 ‘무조건 고(GO!)’였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