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말씀 중에 ‘대인은 어린아이 때의 그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라는 게 있지요. 그 말을 열 살 때 듣고 결심했어요. 평생 열 살 아이로 살기로.”

일흔여섯의 가야금 명인 황병기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스스로를 ‘유치한 어른’이라고 불렀다. 국립발레단 창단 50주년을 기념하는 두 번째 창작발레 ‘아름다운 조우’에서 음악감독을 맡은 그는 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젊은이들과의 작업이 즐거운 이유는 내가 어린 아이의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야금과 함께한 세월만 61년. 창작에만 50년을 쏟아부었지만 그는 아직도 매일 가야금을 연주한다. 중학교 3학년이던 1951년 부산 피란 시절 한 친구의 권유로 가야금과 첫 인연을 맺었다. 1950년대엔 국악과가 없어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지만 가야금에서 손을 뗄 수 없어 국내 처음으로 개설된 서울대 음대 국악과에서 가야금을 가르쳤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그의 창작곡 ‘침향무’ ‘비단길’ ‘아이보개’ 등을 직접 연주한다. 관객들에게 작품 해설도 들려준다. 파리오페라발레단 출신 무용수이자 신예 안무가인 니콜라 폴, 국립발레단 발레마스터 박일 씨, 서울예술단 예술감독이자 중요무형문화제 제92호 태평무 이수자 정혜진 씨 등 3명의 안무가가 만들어낸 춤사위에 그의 가야금 선율을 얹는다.

황 교수는 “무용 작품을 위해 곡을 쓴 적은 없었지만 유난히 춤과 인연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1965년 첫 번째 가야금 연주곡 ‘숲’이 미국의 안무가 칼 월스의 작품에 쓰여 일본인 무용수 네 명이 이 곡에 맞춰 춤을 췄다. 그의 ‘미궁’은 비보이들의 춤에 오래도록 사용됐다.

황 교수는 “원래 서양음악에 맞춰 안무해서 춤추는 것이 일반적인 발레이지만 세계적인 발레단 반열에 오른 국립발레단에는 한국적인 음악을 곁들인 독자적 레퍼토리가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이 작품을 만들었다”며 “순전히 가야금 음악으로만 발레 작품을 발표하게 돼 뿌듯하고 설렌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무용수 니콜라 폴은 “현존하는 작곡가의 음악에 맞춰 작업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돼 영광”이라며 “음악이 마음에 와닿지 않으면 안무를 하기가 힘든데 황 선생님의 음악에는 처음 듣는 순간부터 감정을 뒤흔드는 힘과 절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국 전통음악의 아름다움을 발레로 표현하는 국립발레단의 ‘아름다운 조우’는 오는 27~28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동훈, 김리회 등이 주역을 맡는다. 2만~6만원. (02)587-6181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