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초 김기덕 감독이 영화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에서 한국인 최초로 감독상을 받고 돌아왔을 때 감독협회 주최 축하연 분위기는 썰렁했다. 연회장을 찾은 이들은 대부분 왕년의 영화인들이었고, 한창 잘나가는 감독이나 배우의 얼굴은 드물었다. 한국에서 김 감독에 대한 대접은 차가움에 가깝다. 베니스 베를린 선댄스 모스크바 등 국제영화제에서 받은 화려한 조명은 귀국과 함께 꺼진다.

영화계 내부의 평가는 물론이고 극장흥행도 신통치 않았다. 참신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1996년 발표한 첫 작품 ‘악어’에서부터 반응은 기대 이하였다. 같은 해 데뷔한 홍상수 감독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호평을 받으며 스타 감독의 반열에 오른 것과는 판이하다. ‘야생동물 보호구역’ ‘파란 대문’ 등도 관객 5만명을 넘기지 못했다. 그나마 ‘나쁜 남자’가 70만명을 동원해 그로서는 ‘대박’을 쳤지만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무차별 공격을 당했다. 학연으로 얽힌 국내 영화판에서 중학교 중퇴 학력의 비주류로 개성 뚜렷한 독립영화를 고집하다 보니 ‘이단아’라는 꼬리표도 달게 됐다.

2006년 8월7일에는 “한국에선 더 이상 영화를 개봉하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저예산 ‘작은 영화’들은 스크린 확보 경쟁에 밀려 개봉조차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는 “오늘이 김기덕의 제삿날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2008년에는 그가 시나리오를 쓰고 제자 장훈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영화다’를 놓고 배급사와 소송도 벌였다. 급기야 2010년 말에는 ‘김기덕이 폐인이 됐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의 영화에는 상상을 뛰어 넘는 잔혹한 폭력 장면이 많다. 소재도 엽기적이다. 킬링 타임용으로 느긋하게 즐기려는 관객들에겐 한없이 불편하다. 역겹다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인간 내면에 잠재된 폭력성과 야만성을 끄집어내는 연출만은 일품이다. 제작비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길어야 4개월, 짧으면 3시간20분 만에 만드는 영화치고는 놀라운 완성도를 보여준다.

김 감독이 18번째 영화 ‘피에타’로 69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자 영화계가 난리다. 한국영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 그가 자랑스럽다는 것이 많지만 한편에선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제작비의 대부분을 스스로의 돈과 해외판매 수익으로 충당했을 정도로 그를 냉대해왔기 때문이다. 김 감독 자신도 얼마 전 “국내 배급이 어려워 작품만 좋으면 성과를 내는 해외영화제에 자주 출품했다”고 털어놨다. 이단아에서 ‘거장’으로 뛰어오른 김기덕의 영화가 앞으로 국내에서 어떤 대접을 받을지 주목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