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성충동 약물치료, 이른바 ‘화학적 거세’의 실시 대상을 대폭 확대키로 했다. 지난 4일 법무부가 발표한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르면 16세 미만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에 대한 현행 약물치료 규정이 19세 미만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에게도 확대 적용된다.

화학적 거세는 성선자극호르몬(황체호르몬) 길항제인 ‘루프론(Lupron:leuprolide)’을 인체에 투여해 성충동을 억제하는 약물 치료법을 이른다. 길항제는 상반되는 2가지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여 그 효과를 서로 상쇄시키는 약. 몸 안으로 들어간 루프론은 고환에 있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억제시켜 성충동을 막는다.

루프론은 1985년 미국의 제약회사인 탭(TAP)이 전립선암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한 약물. 하지만 루프론은 전립선에 생긴 암세포만 없애는 게 아니었다. 환자의 상당수가 성욕 감퇴를 호소했다. 테스토스테론 분비량이 줄어들었기 때문. 이 사실이 알려지자 성범죄자들에 대한 강력한 대처를 외치던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1996년 루프론을 이용한 화학적 거세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다른 지역도 잇따라 이 제도를 시행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미국 오리건주에서 2000년부터 5년간 가석방된 성폭력범죄자의 재범률을 분석한 결과 약물 치료를 받은 79명은 다시 성폭력을 저지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도 높다. 화학적 거세가 성범죄를 100% 차단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남성호르몬이 줄어든다고 해서 성생활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성범죄자들은 성욕뿐만 아니라 폭력적인 성향을 함께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김경란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화학적 거세가 성충동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는 있지만 성범죄자들의 근본적인 폭력성이나 성적환상까지 줄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약물치료가 심혈관 질환이나 골다공증 등 다양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대열 한림대 의대 비뇨기과 교수 역시 “인면수심의 성범죄자라 할지라도 화학적 거세에 앞서 이들의 행동과 의식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전문적인 정신심리적인 치료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