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나라 중 한국 정부가 먼저 접촉한 곳은 일본이었다. 10월11일 한·일 재무장관 회담을 시작으로 양국 간 금융위기 협력방안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했다.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통화스와프를 타진하기 위해 비밀리에 일본 도쿄를 방문한다. 당시 일본 재무성 담당국장이 최 국장의 통화스와프 제안을 듣고 내놓은 숫자는 30억달러였다. 한·미 통화스와프 금액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1997년 12월 외환위기 당시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거부당한 임창열 경제부총리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일본이었다. 하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고 결국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됐다는 쓰라린 기억이 떠올랐다.
최종구의 회고. “일본 재무성 국장에게 영어로 ‘Small is much worse than nothing(적은 금액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이라고 말해줬다.” 다음날 귀국하니 일본에서 최 국장 앞으로 이메일이 와 있었다. ‘70억달러’ 제의였다. 최 국장은 다시 한번 모욕감을 느꼈다.
정부는 작전을 바꿔 중국을 먼저 끌어들이기로 했다. 최 국장이 일본에서 돌아온 지 열흘 뒤인 10월22일 중국 베이징의 영빈관인 댜오위타이. 강만수 재정부 장관은 중국 측 파트너인 셰쉬런 재무장관과 한·중 재무장관 회담을 갖고 이렇게 말했다. “한·중 통화스와프는 위안화가 기축통화로 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이 말에 셰 장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양측은 기존 40억달러였던 통화스와프 규모를 300억달러로 늘리기로 합의했다. 중국과 합의가 끝났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일본의 태도가 급변했다. 일본 재무성 고위 간부는 재정부에 전화를 걸어 “우리(일본)도 중국만큼은 해야겠다”고 주장했다. 결국 한국은 중국 일본과 300억달러씩 총 600억달러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했다.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일본의 경쟁 관계를 이용해 실리를 챙긴 것이었다.
특별취재팀 차병석 정치부 차장(팀장), 이심기 경제부 차장, 서욱진 산업부 차장, 류시훈 금융부 기자 mbnomic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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