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배심원 '텃세'…애플 디자인만 인정
미국 시민으로 이뤄진 배심원들이 애플에 다소 유리한 평결을 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는 있었지만 ‘일방적인 승리’를 안겨주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와 시장의 대체적인 분위기였다. 미국 재판부가 “삼성전자와 애플은 이런(특히 침해 소송) 문제를 법정에 가져오지 말고 합의하라”고 여러 차례 종용할 만큼 특허 침해 여부를 법정에서 가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 배심원들은 24일(현지시간) ‘애플이 주장한 디자인 특허’는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인정하고, ‘삼성전자가 주장한 기술 특허’는 전혀 인정해주지 않았다. 9명의 배심원단은 “삼성전자가 의도적으로 애플 특허를 침해했다”며 10억5000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평결했다.

이에 대해 삼성은 “이번 평결은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고 업계 혁신을 가로막을 것”이라며 “배심원 평결 결과에 대해 즉각 이의를 제기할 예정이며 최종 판결에 따라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으며 26일 일요일임에도 고위 임원들이 출근해 대책을 논의했다.

삼성전자에만 부과한 배상금 10억5000만달러는 현재 환율로 1조20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이다. 애플이 주장한 디자인 특허 침해 피해 금액을 거의 대부분 받아들인 것이다.

비전문가인 배심원들이 급속하게 바뀌는 정보기술(IT)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도 의문이다. 배심원으로 참여한 매뉴얼 일레이건 씨는 “(애플의 특허인) 바운스백과 핀치 투 줌 등의 특허를 놓고 배심원들이 열띤 논쟁을 벌였지만 결론 없이 건너뛰었다”고 말했다. 이 특허들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않은 채 평결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미국 법률 전문 사이트 그로크로(Groklaw)조차 “배심원들이 평결을 서두른 증거가 있다”고 지적했다. 마이클 리시 빌라노바대 교수는 “예비 판매금지 대상인 갤럭시탭은 디자인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고 아이폰과 전혀 다르게 생긴 휴대폰은 특허를 침해했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디자인 특허법이 망가진 것으로 이번 소송은 대법원에서 다룰 사안”이라고 비판했다.

김광현/이승우 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