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항공 첫 여성 '파일럿 심사관' 이혜정 기장
“남자들보다 체력이 약해서 비행이 힘들지 않냐고요. 아줌마 근성을 얕보시면 안 됩니다.”

지난달 국내 처음으로 민간항공 여성 위촉심사관에 선정된 이혜정 이스타항공 기장(44·사진). 조종사 심사관과 기장이라는 2인 역할에 바쁜 그를 지난 23일 서울 방화동 이스타항공 본사에서 만났다.

먼저 여성이라는 점이 조종할 때 체력적으로 불리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이 기장은 맞받아쳤다. “직사광선을 자주 받기 때문에 피부 관리가 힘들다는 것 정도가 여자 기장의 단점이라면 단점이죠.” 장난스레 근육을 만들어 보인 팔은 상공에서 강한 햇빛에 노출된 탓에 검게 그을려 있었다.

국내 첫 민간항공 여성 ‘위촉심사관’이 된 것과 관련해 이 기장은 “한 달에 두세 번 기장과 부기장에 대한 정기 체크와 수시 체크, 기종 전환 심사 등의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고 말했다. “비행 경력이 더 많은 선배를 심사하기도 하지만 승객의 생명을 책임지는 조종사의 자격을 심사하는 데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항공기 비행 경력 1000시간 이상의 기장이 국토해양부의 심사를 거쳐 위촉심사관으로 활동할 수 있다.

이 기장은 국내 저비용 항공사 최초의 여성 기장이다. 보잉 737과 747 조종면허를 갖고 있으며 총 8000시간 무사고 운항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대한항공 3명, 아시아나항공 2명을 포함한 국내 6명의 여기장 가운데 비행시간이 가장 길다. 1997년 9월부터 아시아나에서 부기장으로 일하다 2009년 9월 이스타항공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듬해 2월 기장이 됐다.

이 기장은 객실에서 승객을 맞이하던 승무원 출신이다. 아시아나에서 근무하던 1995년 조종사 모집공고를 보고 원서를 넣었다. 그는 “군필 등 여러 가지 조건 항목이 있었지만 ‘여자는 안 된다’는 내용은 없어서 용기를 냈다”고 했다.

총 50여명이 응시했지만 훈련생으로 선발된 것은 이 기장 한 명이었다. 2년 뒤 부기장이 됐고 비슷한 시기에 대한항공도 여자 부기장을 배출했다. 이 기장은 여성 조종사의 장점으로 소통능력을 꼽았다. 그는 “지금은 기계가 다 자동화돼 기장과 부기장, 승무원 간 협력이 매우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모든 워킹맘이 그렇듯 그의 가장 큰 고민도 육아다. 밤샘이 많고 근무 스케줄이 일정치 않아 아들과 딸을 키우기가 만만치 않다고 했다. 그는 “그래도 평일에 쉬는 날이 많고 미리 얘기만 하면 스케줄도 조정할 수 있어 다른 직장여성보다는 나은 편”이라며 “시어머니와 아시아나 기장인 남편의 이해와 도움이 큰 힘이 된다”고 전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여자가 겁이 많기 때문에 조종사에 도전 자체를 안 해서 그렇지 기술적으로 전혀 차이가 없다”고 덧붙였다.

“조종사는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인 직업이에요. 수백명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성취감도 크고요. 건강한 신체와 대담함을 갖춘 여성이라면 꿈을 갖고 도전해봤으면 합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