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영업맨 '新 서바이벌 전쟁'] 경쟁사 동향까지 파악…'첩보전' 방불
미국 할리우드 영화 ‘러브앤드드럭스’를 보면 화이자의 영업사원인 주인공이 약품을 납품하기 위해 간호사를 유혹하는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이미 약품 진열대에 놓인 경쟁사의 정신과용 샘플 약품(프로작)이 의사 눈에 안 띄게 쓸어담아 버리고, 대신 자사의 약품(졸로푸트)을 슬쩍 놓다가 나중에 경쟁사 사원에게 걸려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블록버스터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를 맡게 되면서 실적을 크게 늘린다.

종합병원은 위와 유사한 ‘지능전’이 벌어지는 제약영업의 격전지다. 업계에서 ‘동네병원’ 영업팀이 ‘육탄전’으로 대변되는 소총부대라면, 종합병원 영업팀은 ‘대포 부대’로 통한다. 병의원 영업에 비해 약품을 납품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기회도 드물지만, 일단 납품하면 물량이 훨씬 크고 지속적이기 때문이다.

종합병원에 약을 납품하려면 치열한 입찰을 거친 후 원내 ‘약제심의위원회(DC·drug commitee)’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를 통과해야 처방코드가 부여되고, 약제 보험심사 구매파트 등을 거쳐 실제 처방이 이뤄질 때까지 3개월가량이 걸린다. 문제는 약심을 한강성심병원처럼 1년에 한 번만 여는 곳도 있고, 분기마다 여는 곳도 있다는 점이다. 원장 1명의 마음만 확실히 잡으면 바로 다음날 처방이 이뤄질 수도 있는 병·의원 영업과는 차이가 크다.

영업 13년차인 종합병원 담당 A씨는 “만약 타깃(영업)약품이 떨어졌는데 이미 약심이 지나버린 후라면 짧게는 3~6개월, 길게는 1년을 실적 없이 (해당 약품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한다”며 “중간에 쉽게 지친다”고 애로를 털어놨다. 또 “이런 상황에서 다음 약심에서 떨어져 ‘멘붕(멘탈붕괴·큰 충격에 빠져 어쩔 줄 모른다는 뜻의 신조어)’ 상태에 빠진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종합병원 담당 영업사원들은 ‘문무’를 겸비해야 한다고. 의사의 눈을 잡아 끌 수 있는 학술적인 프레젠테이션(PT) 능력과 간택 영업을 동시에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팀장급 종합병원 영업사원 B씨는 “사내 교육이 상당히 많아지고 있다”며 “정기적으로 시험을 보고 일정 점수 이하의 사원들에게는 인사 불이익을 주는 방식을 통해 전문 지식 쌓기를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일 담당 의사의 일정에 따라 진료실에 가장 먼저 찾아가는 건 기본이고, 타사 약품 홍보 스티커가 붙은 음료수는 슬그머니 빼내고 그 자리에 자사 스티커 제품을 놓고 온다. 담당 의사가 경쟁사 직원과 점심식사를 하러 가는지 등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첩보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민첩하게 움직여야 한다. 해당 과 전임교수와 간호사 등과 친분을 쌓는 노력도 게을리 할 수 없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