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소기업들의 상황이 심상찮다. 제조 기업들이 줄이어 사업을 대폭 줄이거나 아예 문을 닫는다. 100년 이상 이어온 기업들도 도산한다. 2000년 34만개에 달하던 중소기업(4인 이상)이 2010년 22만개로 40% 이상 감소했다. 1983년 9000개를 넘었던 도쿄 오타지역의 마치코바(동네에 있는 소규모 공장)들은 지금 4000개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 경제의 상징이요 소중한 자산인 중소기업이다.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으로 불황에도 꿋꿋이 버텨나가는 저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휘청대더니만 지금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여러 지원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다. 정부에서 대출금리를 지원하는 제도가 올해 말 끝나면 사태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가기만 한다.

전자부품 업종 침체 두드러져

특히 전자부품과 정보통신 중소기업들의 쇠락이 두드러진다. 일본 중기청 발표 중기생산지수에서 지난해 정보통신기계 업종 생산은 전년 대비 47.4%, 전자부품 업종은 7.5%나 줄어들었다. 올 들어서도 줄곧 감소하고 있다. VCR을 제조하는 데 쓰이는 1000개 이상의 부품들을 모두 제공해왔던 그런 기업들이었다.

세계를 주름잡던 부품 기업들의 침체는 물론 조립업체의 몰락에 기인한다. 올 2분기 전자업체들의 실적은 8개 대형 업체 중 5개가 적자다. 소니와 파나소닉 샤프의 2분기 영업적자는 1조6000억엔이 넘는다. 이들 전자업체는 시장 수요와 산업 트렌드가 변한 환경에서 새로운 상품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전자업계의 호전 기미는 앞으로도 보이지 않는다고 FT는 냉철하게 평가한다. 뾰족한 대안 없이 이들과 공생관계로만 지내왔던 중소기업들 역시 타격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반면 기계부품 관련 중소업체들은 불황 체감도가 훨씬 덜하다. 일반 기계업종의 중기생산지수는 전년 대비 12.3% 늘었다. 도요타 등 자동차업계의 호조 때문이다. 도요타의 2분기 판매실적은 전년 대비 60%나 늘어났고 영업이익만 3530억엔이었다. 환율로 인한 고통을 이겨내려 온갖 방법을 다 짜내는 도요타다.

대기업 때리면 중기에 부메랑

과감한 구조조정과 비용 삭감을 지속했다. 수익이 안 되면 국내 공장을 과감하게 청산하고 해외 공장으로 눈을 돌렸다. 중소기업들에 ‘도요타는 지옥’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지독하게 굴었다. 여기서 생존한 중소기업들은 거의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게 됐다. 결국 중소기업의 성패는 대기업에서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뜩이나 엔고와 인구 감소, 저출산 고령화, 전기 요금, 전문인력 문제 등에 신음하는 일본 경제다. 일본 정부는 경쟁력 있는 일본 기업들이 행여 해외로 눈을 돌릴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소기업 진흥책도 대기업이 공장을 일본에서 짓고 생산활동과 영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의 연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인세 인하와 규제 완화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대기업들은 해외로 나가고 결국 중소기업을 쇠락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눈을 돌려 한국을 보자. 한국에서는 정부가 동반성장을 외치면서 꼬투리만 잡히면 대기업 때리기에 나선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만들어 대기업 참여를 배제하려 한다. 대기업에 불리한 각종 세제만 양산하려고 든다. 그 결과는 부메랑이 돼 오히려 중소기업을 죽이는 꼴이 된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