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의 공시정보 유출 사고 여파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적극적으로 해소하고 이를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하는 거래소 직원이 직접 연루된 사건이어서 파장이 더 커지고 있다.

대규모 수주 계약은 물론 무상증자와 인수·합병(M&A) 등 중요 사항 공시들은 해당 상장기업의 주가를 단 번에 끌어올릴 수 있는 대형 호재다. 따라서 금융감독당국도 내부자 매매와 사전 정보 유출 차단에 항상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이 와중에 공시정보 유출 의혹을 받아온 한국거래소 한 직원이 검찰 조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발생했다. 이 직원은 공시팀이 아닌 시장운영팀 소속인 것으로 확인됐다. 시장운영팀은 무상증자 등 매매정지 사유 발생 시 시장조치를 하고 있다.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기업의 중요한 공시 정보를 외부로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던 이모씨(51)가 지난 18일 경기도 한강 하류지역에서 물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씨는 상장사들의 공시를 미리 접수받아 업무 처리하는 부서인 공시팀 소속이 아니었다. 무상증자와 M&A 등 상대적으로 주가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공시가 나오면 투자자 보호 차원 등으로 매매정지 사유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러한 시장 조치가 문제 없이 진행되는지 여부를 지켜보는 곳인 시장운영팀 소속이었다.

일반적으로 시장운영팀은 무상증자, M&A 등에 따른 종목별 매매정지 사안 이외에도 배당락, 권리락 등 시장의 전반적인 움직임을 모니터링(monitoring)하는 곳이다.

이씨는 또 서울 여의도 근무를 위해 자발적으로 발령 신청을 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거래소 관계자는 "부산 본사 파생상품시장본부에서 근무해오다 지난 2월 시장운영팀으로 발령이 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가족과 떨어져 부산에서 근무하면서 어려움을 호소했다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씨는 거래소 안에서 철저하게 차단 운영되고 있는 주요 공시 사항을 어떻게 외부로 유출할 수 있었던 것일까.

코스닥 상장기업들의 공시가 일반투자자들에게 공개될 때까지는 크게 5단계를 거치게 된다. '기업의 수시·공정공시 분류 판단→임원보고 및 이사회 결정→계약서 등 관련자료 거래소 보고(팩스 등)→공시 수정 및 미비점 보완→공시' 단계다.

상장기업들은 중요 계약 건의 계약서가 없으면 공시할 수 없으며, 공시팀 측에 계약서를 팩스로 보내는 것 이외에 거래소 등의 자체 공시 접수시스템에도 계약서 스캔 파일을 첨부해 접수시켜야만 한다.

이후 실질적인 공시 단계에 들어가면 '접수대기 중→검토 중→완료' 등 또 한 번의 3단계 접수시스템 모니터링 과정을 거치게 된다. '완료'의 단계에서 모든 일반투자자들이 해당기업의 공시 사항을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이씨는 시장운영팀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마지막 접수단계인 모니터링 과정에서 매매거래가 정지되기 전 일부 미공개 정보를 외부로 유출시킨 것으로 관계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결국 이런 거래소의 복잡한 공시 시스템으로 인해 많은 거래소 직원들이 미공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고 이를 악용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던 셈이다.

이에 따라 거래소는 소속 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 조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거래소는 일단 이씨가 공시정보를 사전 유출했다는 제보를 받은 뒤 공시 시스템에 접근 가능한 직원을 대상으로 내부조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공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직원들의 로그 기록과 공시전 10여분 사이 매수ㆍ매매가 집중된 종목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거래소 고위 관계자는 "아직까지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는 고려하고 있지 않으나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면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거래소는 이날 오전 "공시정보 유출 사고을 막기 위해 거래소 직원이 미공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정보 접근자들의 권한을 줄여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