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가 어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배임 등으로 기소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 징역4년과 벌금 51억원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는 뉴스는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식으로 법 집행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에 전혀 이의가 없다. 또 이런 관행이 과거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김 회장의 주된 범죄행위라는 업무상 배임 횡령 부분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지는 않다고 본다. 특히 업무상 배임은 이를 통한 이득이 실질적으로 어디에 귀속되었는지가 중요한 판단기준이 돼야 마땅하다. 만일 김 회장 개인이 아닌 계열사로 이익이 귀속되었다면 업무상 배임에 따른 처벌의 수위도 달라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어제 판결은 재벌총수의 횡령 배임을 무겁게 처벌하자는 최근 정치권의 움직임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본란에서 지적했듯이 동서고금에 대그룹 총수라고 중(重)처벌하라는 법은 없다. ‘처벌은 범죄에 상응해야 한다’는 비례 원칙에도 위배될 뿐더러 보다 근본적으로는 업무상 배임죄를 경영판단의 자유와 명확하게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한국 독일 등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 국가에서 업무상 배임이라는 범죄항목이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룹 경영은 종종 단기적 이익과 중장기적 이익을 엄격하게 구분하기 어렵고 결과적 손실과 의도된 이익을 구별하기도 쉽지 않다.

물론 법원 판결도 정치나 시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유전무죄는 근절되는 것이 마땅하지만 대기업 회장의 범죄는 곧, 엄벌(嚴罰)이라는 것도 곤란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