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텔, 대만의 TSMC 등 글로벌 반도체업체들이 돈을 싸들고 반도체 공정의 핵심 장비인 ‘노광기’ 제조업체들을 찾고 있다. 많게는 수조원 이상의 돈을 투자하며 성능 좋은 장비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는 양상이다. 반도체 수요가 줄어들자 노광기 성능을 향상시켜 반도체 생산 비용을 낮추기 위해서다.

인텔은 차세대 노광기를 개발하기 위해 일본 니콘에 최소 수백억엔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8일 보도했다. 인텔은 지난달 10일에도 네덜란드의 노광기 제조업체 ASML에 앞으로 5년간 41억달러(약 4조6000억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TSMC도 지난 5일 ASML에 14억달러를 쏟아붓기로 결정했다. 삼성전자도 ASML에 대한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주요 반도체업체들이 자신들에게 물건을 팔아야 하는 장비업체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은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서다. 노광기는 반도체의 원재료인 웨이퍼(원형 실리콘 기판)에 회로를 찍어내는 장비다. 웨이퍼 위에 회로를 찍어낸 뒤 네모난 모양으로 잘라낸 것이 반도체다. 회로를 정밀하게 그리면 웨이퍼 한 장당 만들 수 있는 반도체 수가 많아진다. 그만큼 생산 단가가 낮아진다.

인텔, TSMC 등은 상당한 자금을 투자해 더욱 정밀한 패턴을 그릴 수 있는 노광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주로 쓰이는 웨이퍼(지름 300㎜)보다 큰 웨이퍼(지름 450㎜)를 가공할 수 있는 노광기도 개발할 계획이다. 원판이 클수록 반도체 생산 효율이 더 높아진다.

반도체용 고급 노광기 시장은 ASML이 약 8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니콘이 뒤를 따르고 있다. 최고급 반도체용 노광기를 만들 수 있는 곳은 두 회사뿐이다. 고급 노광기 가격은 대당 1000억원이 넘는다.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면서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노광기업체에 투자하고 있다”며 “인텔이 니콘 투자를 결정한 것은 ASML을 대체할 노광기를 개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노광(露光)기

반도체 공정의 핵심 장비. 반도체의 원재료인 웨이퍼(원형의 실리콘 기판) 위에 회로 패턴이 그려진 틀을 입힌 뒤 빛을 쏘는 기능을 한다. 빛을 쏴 웨이퍼 위에 회로 패턴 모양대로 ‘사진’을 찍는 식이다. 노광기 기능이 좋아지면 더욱 정밀한 패턴을 찍어낼 수 있고 웨이퍼 한 장당 생산할 수 있는 반도체 수가 많아져 생산 단가가 낮아진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