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대전 봉명동에서 분양된 298가구 규모의 F주상복합아파트는 청약자가 30명에 불과했다. 세종시가 차로 15분 거리로 가까운 데다 요즘 인기 있는 전용면적 54~84㎡ 중소형으로만 구성됐음에도 실수요자들이 외면했다. 이튿날 경남 양산신도시에서 공급된 N아파트도 1306가구 모집에 687명이 청약해 청약경쟁률이 0.53 대 1에 그쳤다. 부산과 지하철로 연결되는 양산신도시는 올초 분양된 아파트 계약률이 70%를 웃돌 정도로 순항하던 지역이다.

김규정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나면서 3년 가까이 지속된 지방시장의 활황세가 한풀 꺾이고 있다”며 “수도권을 대신해 그나마 숨통을 터주던 지방시장마저 위축될 조짐을 보이자 건설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마저 얼어붙나

8일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이달 지방 주택경기실사지수(HBSI) 전망치는 56.5로 지난달 전망치(92)보다 35.5포인트나 하락했다. 서울과 수도권이 전달보다 각각 4.6포인트와 2.9포인트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지방의 하락폭이 크다. 기준값인 100 이하면 향후 주택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보는 응답이 많다는 뜻이다. HBSI는 한국주택협회와 대한주택건설협회 등에 소속된 건설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여서 지방 주택시장이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황은정 주산연 연구원은 “개발호재와 신규공급 증가로 상대적인 호황을 누리던 지방시장이 수요 위축과 공급과잉으로 활력이 떨어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지방시장을 선도했던 부산과 대전 집값도 최근 약보합세로 돌아섰다. 국민은행의 주택가격 동향조사 결과 지난 6, 7월 부산 집값 상승률은 0%로 집계됐다. 특히 고가의 아파트가 많은 해운대구(-0.4%)와 수영구(-0.3%)는 비교적 큰 폭으로 하락했다. 지난 6월 0.1% 하락한 대전은 지난달 0.3%로 하락폭을 키웠다.

1순위에서 일찌감치 청약이 마감돼 ‘없어서 못 판다던’ 세종시에서도 처음으로 청약 미달 아파트가 나왔다. 최근 공급된 5년 공공임대아파트인 ‘세종시 영무예다음’의 경우 507가구 모집에 470명이 청약해 37가구가 주인을 찾지 못했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실장은 “상반기에만 8500여가구가 쏟아진 세종시도 물량 부담으로 숨고르기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앞으로는 입지 여건과 아파트 브랜드 파워에 따라 분양 성패가 갈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구·광주·울산 등은 순항 중

대형건설사 마케팅 담당자들에 따르면 모든 지방 지역이 동시에 얼어붙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공급이 적었던 지역, 혁신도시 등 개발호재가 있는 지역, 산업단지 배후가 튼튼한 곳 등은 아직까지 순항 중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미분양 아파트가 2만여가구에 달하던 대구는 장기간 신규 공급이 적었던 덕에 분양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 최근 분양된 ‘이시아폴리스 더샵4차(774가구)’와 ‘대신 센트럴 자이’(1147가구)의 계약률은 80%를 웃돈다.

최근 조합원 계약을 받은 광주 화정동 유니버시아드 선수촌아파트의 경우 조합원 물량 2769가구 중 2684가구가 계약을 마쳐 97%에 달하는 계약률을 달성했다. 우정혁신도시를 중심으로 분양이 잇따르고 있는 울산도 상반기 8개 단지 중 5개 단지가 순위 내 마감에 성공했다.

전문가들은 집값 상승시점이 빨랐던 부산과 대전, 세종시 등이 우선적으로 조정 국면에 들어간 것으로 분석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팀장은 “지방도 앞으로는 지역별 수급과 경제 상황, 개발 호재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보형/정소람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