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관의 임기만료일 또는 정년도래일까지 후임자를 임명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법 제6조 제3항 내용이다. 헌법재판소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단 한 명의 헌법재판관 공백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건 지극한 상식이다.

그런데 당연해 보이는 이 조항은 2010년 5월에야 개정됐다. 그 이전에는 전임 재판관의 임기 만료 후 30일 이내에 임명하도록 했다. 2006년 권성 전 재판관 후임으로 이동흡 재판관이 임명되기까지 32일, 같은 해 전효숙 당시 재판관이 헌재 소장으로 지명됐다가 청와대가 지명을 철회하기까지 140일 동안 이어진 재판관 공석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장치로 도입됐다는 게 헌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30일이라는 유예기간을 둔 것이 오히려 지명권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불렀다는 판단에서 이마저도 없애버려 지명권자들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다.

다음달 14일이면 김종대 민형기 이동흡 목영준 등 4명의 재판관이 퇴임한다. 지난해 7월 퇴임한 조대현 전 재판관 후임도 뽑아야 한다. 이 중 국회는 3명을 뽑을 권한이 헌법에 의해 주어져 있다. 1년 이상 재판관을 공석시킨 잘못을 만회할 절호의 기회다. 이번에는 6조3항을 잘 지키면 된다.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2010년부터 시행되도록 한 곳도 국회다.

하지만 정치권은 직무 유기 중으로 보인다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 후보자들이 인사청문회를 무사 통과한다는 전제 아래 임명까지 걸리는 시간은 적어도 한 달.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른 시일 내에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후보자 3명에 대한 논의에 들어가야 하지만 정치권은 구체적인 일정을 잡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권은 몇 배수의 후보자를 물색해 놓고 추리는 단계에 들어서기는커녕, 이제서야 ‘누가 좋겠느냐’고 알아보는 수준이라는 소문도 돈다.

국회는 이미 조 전 재판관 후임 문제를 1년 넘게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원죄가 있는데도 그렇다.

헌법재판관과 대법관이 교체될 때마다 공석 사태 우려가 불거졌고, 현실로 나타나는 경우도 잦았다.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헌법재판소법 6조 3항과 같은, 당연한 사실을 굳이 적시해야 하는 법 조항도 명문화됐다. 그러나 이마저도 아무도 지키지 않는 법이 될 위기다.

이고운 지식사회부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