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웨일스 카디프의 밀레니엄 경기장. 전·후반 90분과 연장 30분 포함 총 120분의 혈투를 1-1로 마친 뒤 4강행 승자를 결정짓는 승부차기에 모두가 숨죽였다. 승부차기 4-4 동점 상황에서 영국의 마지막 키커로 나선 대니얼 스터리지(첼시)는 한번의 속임수 동작을 취한 뒤 골대 오른쪽으로 공을 찼다. 한국의 골키퍼 이범영(부산)은 정확하게 볼을 향해 왼쪽으로 몸을 날렸고 골을 막아냈다.

승부차기 끝에 한국은 사상 첫 올림픽 4강 진출을 이뤄낸 데 비해 ‘축구 종가’ 영국은 승부차기의 불운에 또다시 발목 잡히며 홈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축구 대표팀은 5일 새벽(한국시간) 영국과 8강전에서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5-4로 이겨 준결승 진출을 달성했다.

◆심리가 좌우하는 승부차기

‘11m 러시안 룰렛’으로도 불리는 승부차기는 키커와 골키퍼의 숨막히는 대결이다. 넣어야 이길 수 있는 키커와 막아야 하는 숙명을 안고 골대 앞에 서 있는 골키퍼는 속고 속이는 심리게임을 벌인다. 피말리는 승부를 보는 사람들은 극도의 긴장감에 자신도 모르게 손에 땀을 쥔다.

이론적으로 골키퍼가 페널티킥을 막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가로 7.32m, 세로 2.44m 크기의 골대 앞에 골키퍼는 선다. 키커는 골대로부터 11m 지점에 볼을 놓고 승부를 펼친다. 정상급 축구선수가 찬 공이 골라인을 통과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0.4초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골키퍼가 몸을 날리는 데는 약 0.6초가 소요된다.

비밀은 관성에 숨어 있다. 정지 상태에 있다가 볼을 향해 몸을 날려야 하는 골키퍼에겐 정지돼 있는 물체가 계속 정지하려고 하는 ‘정지관성’이 작용된다. 골키퍼의 질량에 비례해 관성은 그만큼 커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승부가 갈리는 걸까. 정답은 선수들의 심리 상태다. 이론적으로 페널티킥의 성공률은 100%여야 하는데 실제로는 약 70~80%에 불과하다. 송주호 체육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키커의 심리적 압박감이 실수를 유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승부차기에 강한 한국, 약한 영국

이날 선방한 한국의 골키퍼 이범영은 K리그에서도 승부차기에선 최고의 승부를 펼쳤던 ‘거미손’ 수문장으로 유명하다. 이범영은 “승부차기는 지금까지 세 번 정도밖에 지지 않았던 것 같다”면서 “승부차기만큼은 자신이 있어 즐기면서 뛰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정성룡도 1-1로 팽팽하던 전반 40분 애런 램지(아스널)의 페널티킥을 막아내며 승부를 연장전까지 끌고갔다. 한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 8강전에서 스페인과 승부차기에서 이운재가 상대의 슛을 막아내고 홍명보가 마무리 골을 넣으며 4강에 진출한 경험이 있다.

이에 반해 영국은 승부차기에 유독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AP통신에 따르면 영국은 역대 메이저 축구대회에서 승부차기까지 간 7번의 경기에서 1승6패에 그쳤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준결승전, 유로1996 준결승전, 1998년 프랑스월드컵 16강전, 유로2004 8강전, 2006년 독일월드컵 8강전, 유로2012 8강전 모두 승부차기에서 패했다.

특히 영국 올림픽 축구대표팀을 이끈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은 잉글랜드 승부차기 잔혹사의 산증인이다. 피어스 감독은 선수로 뛰던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서독과의 준결승 승부차기에서 키커로 나섰지만 실축한 경험이 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