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GM, 크라이슬러 등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이 하이브리드 시스템 개발에 손을 잡았던 2005년. 현대·기아자동차는 독자 노선을 선언했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자체 기술력으로 친환경차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로부터 4년 뒤, 현대·기아차는 독자적인 하이브리드카 시스템 개발에 성공했다. 기술우위에 있는 일본 업체를 피해 하이브리드 관련 특허 1000여개도 획득했다. 업계는 탄탄한 자금력을 갖춘 글로벌 회사들이 성공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고 평가하고 있다. 작년에는 쏘나타 하이브리드, K5 하이브리드를 출시하고 국내에 국산 하이브리드카를 본격적으로 알리고 있다. 이기상 현대·기아자동차 남양연구소 환경차시스템 개발실장(상무)은 올초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후발주자였지만 다른 회사의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했기 때문에 기술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며 “앞으로 전기차, 수소전지차까지 친환경차 부문을 선도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도요타도 놀란 기술력
현대·기아차의 하이브리드카는 순수 독자 기술로 개발한 ‘병렬형 하드타입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장착된다. 하드타입은 소프트 타입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시스템으로 모터만으로도 주행이 가능하다. 출발 후 일정 구간의 저속(시속 30㎞ 전후)까지는 모터로, 속도가 올라가면 엔진이 구동하는 식이다. 반면 소프트 타입은 엔진과 모터가 함께 구동해 모터는 엔진의 보조 역할만 한다. 도요타, GM 등이 하드타입을 쓰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하드타입 중에서도 독특하게 ‘병렬형’ 시스템을 개발했다. 세계 하이브리드 시장을 주도해온 도요타 등 일본 업체가 채택한 방식은 복합형이다. 복합형은 2개의 모터가 각각 배터리 충전과 구동 역할을 맡지만 병렬형은 1개의 모터로 두 기능을 할 수 있다. 모터 2개를 1개로 줄여 크기를 축소했다. 차량의 무게가 가벼워지므로 연비를 개선할 수 있다.
병렬형이 가능해진 것은 경쟁업체들이 포기했던 ‘엔진 클러치’ 기술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한 덕분이다. 현대·기아차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핵심인 엔진 클러치는 엔진과 모터 사이에서 동력을 단속한다. 출발이나 저속 주행에서 모터로 구동하다가 오르막길이나 고속 주행에서는 엔진 클러치와 엔진을 연결해 모터와 엔진을 동시에 구동한다. 현대·기아차는 차가 고속으로 주행 중인 상태에서 빠른 시간 내에 엔진과 클러치를 맞물리게 하는데 성공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오르막에 들어서자마자 엔진이 빠르게 구동하지 못하면 차가 뒤로 미끄러질 수도 있다”며 “도요타도 15년 전 이 방식을 시도했다가 클러치 접합 시간이 1초 이상 걸려 실패하면서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기술이었다”고 설명했다. 현대·기아차는 시행 착오 끝에 이 시간을 0.6초 이하로 줄여 모터와 엔진이 함께 구동하는 순간을 운전자가 느끼지 못하도록 했다.
○수소연료전지차까지 거침없는 도전
병렬형 시스템은 하이브리드카의 성능을 개선했다. 복합형은 시속 80㎞ 이상에서는 모터 가동 구간이 없지만 병렬형은 100㎞ 이상에서도 모터만 돌아가는 구간(가속이 붙은 상태의 평지 또는 내리막)이 발생한다. 고속 주행시 연비를 개선할 수 있다. 경쟁업체의 모터 대비 크기와 중량을 각각 18%, 30% 줄여 연료 효율을 더욱 높였다. 공인연비는 21.0㎞/ℓ로 경제성을 갖췄다.
현대·기아차의 하이브리드카는 국내와 미국 시장에서 상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국내와 미국에서 판매를 시작한 쏘나타와 K5 하이브리드카는 지난 6월까지 각각 총 3만2064대와 1만7932대가 판매됐다.
전기차, 수소연료전지차 등 다양한 친환경차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0년 9월 국내 최초로 개발한 전기차 ‘블루온(Blue On)’을 공개했고 지난해 말 국내 최초의 양산형 전기차인 ‘레이 전기차’를 선보였다.
레이 전기차는 배터리와 전기모터만을 사용해 주행 중 탄소 배출이 전혀 없는 완벽한 친환경 차량이다. 올해 2500대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을 중심으로 보급한다. 2013년부터는 민간에도 전기차를 본격 판매해 전기차 대중화에 앞장선다는 방침이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