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서부 소도시에 가면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다. 바로 월마트의 총기 진열장이다. 호신용 권총부터 사냥용 라이플까지 구비했다. 운전면허 따기보다 총기 구입이 쉽다는 게 과장이 아니다.

한국인은 좀체 이해 못할 게 미국의 총기문화다. 최근 5년만 해도 버지니아공대, 투손 쇼핑센터, 이번 콜로라도 극장 난사까지 대형 총기사건이 즐비하다. 난사범들은 인터넷에서 야동 구매하듯 무기와 탄약을 샀다. 국내에서 그랬다면 총리가 쫓겨나도 모자랐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내 여론은 총기규제 쪽으로 기운 것도 아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조차 사건 닷새가 지나서야 “총기로 인한 폭력을 줄이는 데 노력하겠다”고 마지못해 한마디 했다. 오히려 “수정헌법 2조는 보호돼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토를 달았다. 수정헌법 2조는 총기소유권(right to bear arms)을 규정한 조항이다.

월마트에서도 살 수 있는 총기

언론들은 총기규제가 겉도는 이유로 회원 430만명에 연간 2억달러의 활동비를 쓰는 전미총기협회(NRA)의 로비력을 꼽는다. 하지만 아무리 로비가 강력해도 대다수 국민이 규제에 찬성한다면 정치권이 외면할 수 없다.지난해 여론조사를 보면 총기규제 반대(53%)가 오히려 찬성(43%)보다 더 많다. 미국 역사는 ‘강력한 인민으로부터 국가가 권력을 빼앗아오는 과정’이라는 역사가 앙드레 모로아의 탁견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총기 딜레마는 뿌리가 깊다. 광활한 영토에서 이주민들은 오랫동안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했다. 민병대로 독립전쟁을 치렀고, 치안은 지평선 너머에 있는 반면 무법자나 인디언의 위협은 코앞 현실이었다. 1791년 수정헌법 2조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2008년 수도 워싱턴DC의 총기소유 불법화에 대해 미 대법원이 5 대 4로 위헌 결정을 내렸을 정도다.

건국 초기 헌법 조항이 21세기에도 유효한 것은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 표현대로 ‘너무 늦었다(Too Late)’는 데 이유가 있다. 개인 소지 총기만도 2억5000만정에 달해 성인 전체를 무장시키고도 남는다. 일거에 없애기는 불가능하다. 만약 의회가 총기소유 불법화를 논의한다면 너도나도 무장하려 달려갈 것이다. 총기사건 직후 콜로라도주의 총기 판매가 실제로 급증했다.

숙고 없는 규제는 더 큰 낭패

총기 반납을 강제하면 분실신고가 속출하고, 암시장만 호황을 누릴 것이다. ‘다크나이트’의 조커 같은 악당들이 총을 내놓을 리 만무하다. 권총강도를 총으로 쫓아낸 슈퍼마켓 주인에게서만 총을 회수하는 역선택이 벌어진다는 게 미국인들의 회의적인 시각이다. 균형을 맞춰주는 것을 뜻하는 ‘equalizer’가 권총을 가리키는 속어로 쓰이는 게 흥미롭다.

미국의 총기 딜레마는 규제의 역설에 관한 깊은 시사점을 보여준다. 문제가 보인다고 무조건 틀어막는 게 능사는 아니다. 부작용에 대한 면밀한 숙고와 보완책이 없다면 더 큰 낭패를 가져온다. 1920년대 미국 금주법(禁酒法)이 ‘고상한 실험(Noble Experiment)’이라는 조롱거리가 된 것은 억지 규제가 밀주와 마피아만 숙성시켰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에서 논란을 빚는 경제민주화는 규제의 역설을 보여주는 종합판이다. 정치권은 재벌 때리기 경매를 벌이는 양상이다. 민주통합당이 횡령·배임에 징역 7년을 부르면, 새누리당은 15년에 집행유예 금지를 외치는 식이다. 소위 ‘안철수의 생각’도 별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조차 재벌 해체가 중소기업을 살리는 게 아니라고 지적하는 판이다. 경제민주화가 마치 종교 교리처럼 득세하는 현실이 바로 우리 사회의 총기사고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