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은 주식시장에서 대표적인 장기투자가로 꼽힌다. 주가가 급락하면 블루칩을 싼값에 사들여 장기보유하다가 주가가 반등하면 차익을 남기는 식으로 투자해왔다.

그런던 연기금이 매매전략을 바꾸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레버리지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단기 수익을 극대화하는 매매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레버리지ETF란 변동폭이 코스피200지수의 2배가 되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코스피200지수가 1% 오르면 레버리지ETF는 2%의 수익을 낼 수 있다.

◆레버리지ETF로 수익 극대화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가 본격적인 조정을 받기 시작한 지난 5월 이후 연기금이 레버리지ETF(KODEX레버리지)를 하루 10억원 이상 순매수한 것은 여섯 번이었다. 연기금이 레버리지ETF를 강하게 매수한 날의 공통점은 코스피지수가 1800선 아래로 급락했다는 것이다. 5월18일 코스피지수가 3.40% 하락해 1782.46까지 추락하자 연기금은 레버리지ETF를 14억2100만원어치 순매수했다. 이후 코스피지수가 소폭 반등하다 23일 재차 하락세로 돌아서자 다시 21억8600만원어치를 사들였다. 이때 사들인 물량은 지난달 13,14일 코스피지수가 1800대 중후반까지 반등한 날 처분했다.

이달 들어선 코스피지수가 지난 23일 1800선 밑으로 추락하자 연기금은 다시 레버리지ETF를 15억6800만원어치 샀다. 이튿날인 24일에도 10억4800만원어치 순매수했다.

연기금은 코스피지수 1800선 근처에서 레버리지ETF를 사고, 지수가 1800대 중후반으로 반등하면 차익을 실현하는 전략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심상범 대우증권 AI팀장은 “매수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연기금의 장기 투자 성향에 비춰볼 때 최근의 매매행태는 다소 이례적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주식 순매수 규모는 부쩍 줄어

연기금이 이 같은 행보를 보이는 것은 증시 반등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풀이하고 있다. 곽중보 삼성증권 연구위원은 “과거 사례에 비춰보면 연기금은 주가가 충분히 조정받았다고 판단되면 향후 실적 모멘텀이 좋은 종목을 집중적으로 매수했다”며 “최근엔 다양한 악재들이 산적해 있어 주가가 언제 박스권을 탈피할지 가늠하기 힘들다 보니 레버리지ETF를 통한 단기 수익 극대화에 치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유가증권시장에서 연기금의 하루평균 순매수 규모를 작년 하반기와 비교해보면 매수 강도가 눈에 띄게 약해졌다. 코스피지수가 미국 신용등급 강등 여파로 급격한 조정을 받았던 작년 8월의 경우 연기금은 하루평균 1165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다. 이후에도 연말까지 하루평균 600억~900억원의 순매수 기조를 유지했다. 반면 올 들어 코스피지수 조정이 시작된 지난 5월의 경우 하루평균 순매수 규모가 137억원으로 줄었다. 이달 순매수 규모도 207억원에 그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주가의 반등 시점이 불투명한 것도 요인이지만 아직 주가가 충분히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연기금 관계자들의 기본 인식”이라고 말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