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도와주는 ‘회사’가 있다. 의뢰인의 ‘자발적 동의’를 받아 목숨을 끊어주고, 그들의 장기를 빼내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제공한다. 수술에 참여한 사람들과 회사는 그 과정에서 돈을 번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이 거래는 ‘선(善)’일까 ‘악(惡)’일까.

소설가 임성순 씨(36·사진)의 신작 장편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실천문학사)는 이런 가상의 회사를 내세워 공리주의를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 체제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제목은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유혈 참극이 벌어지는 시대에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경구에서 따왔다. 선한 사람들의 선한 의도가 악을 불러오기도 하는 딜레마를 표현한 말로, 동전의 양면과 같은 선과 악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야기는 신부인 박현석과 의사 최범준, 두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내전이 벌어지던 아프리카의 한 나라에서 선교 중인 젊은 성직자와 봉사활동 중인 젊은 의사로서 맞닥뜨렸던 두 사람은 15년 후 ‘회사’에서 다시 만난다.

일상적으로 학살이 벌어지는 아프리카에서 ‘목숨은 살 자격이 있는 이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된 범준. 그는 병원을 그만두고 자살을 원하는 사람들의 장기를 적출해 필요한 사람에게 이식하는 ‘회사’를 차린다.

현석은 여고생 교인과의 추문에 휘말리며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회사’에서 장기 적출을 기다리는 상황에 처한다.

소설은 15년 전 아프리카와 현재를 오가며 구원의 사명감에 불타던 두 인물이 점차 변해가는 모습을 긴장감 있게 보여준다.

이 소설은 작가의 2010년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컨설턴트》와 올초 출간한 《문근영은 위험해》에 이은 ‘회사 3부작’의 완결편이다.

“전작들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모색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사회 안에 있는 철학의 성격을 물었습니다. 자본주의의 토대인 공리주의가 선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죠.”

하지만 그는 섣불리 이 질문에 답을 내리지 않는다. 작가는 “자살자와 장기이식자 모두가 원하는 것을 이뤄주는 범준은 공리주의를 실천하는 인물”이라며 “그의 행동을 선 혹은 악이라고 딱 잘라 규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선과 악은 같은 배에서 태어난 쌍둥이와 같다는 설명이다.

임씨는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12번이나 퇴고했다. 원고지 2400장 분량의 초고를 절반으로 줄였고, 남은 1200장 중 900장을 다 버리고 새로 썼다. 그만큼 공을 들인 작품이라는 얘기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