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치안'의 핵…경찰 지구대의 明과 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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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팀 리포트] 안전귀가 도우미·미혼모 가정 순찰 vs 늑장 출동·매맞는 경찰
파출소·지구대·치안센터로 지역경찰체제 재편…생활밀착형 서비스 강화
"취객 난동·패싸움 등 효과적 제압 못해" 비난도
파출소·지구대·치안센터로 지역경찰체제 재편…생활밀착형 서비스 강화
"취객 난동·패싸움 등 효과적 제압 못해" 비난도
#1. 서울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는 지난해 10월부터 여성 주민을 대상으로 ‘안전귀가 도우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범지대’인 염리동 9~21, 대흥동 18~22 일대에 사는 여성 주민이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 사이 지구대에 차량을 신청하면 가장 가까이 있는 경찰차량이 출동해 집까지 데려다주는 제도다.
용강지구대 김정현 경사는 “혼자 사는 대학생이나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며 “늦은 밤 혼자 귀가하는 여성들을 노린 성범죄가 빈번해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2. 지난 18일 인터넷 한 포털 게시판에 ‘공개수배합니다. 용인 화분녀 좀 잡아주세요’라는 글과 함께 2분14초 분량의 폐쇄회로(CC)TV 영상이 올라왔다. “CCTV 자료를 경찰지구대로 보냈는데 경찰 측이 찾기 어렵다는 말을 해서 이렇게 인터넷에 올렸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신고를 받은 지구대는 한 달 동안 탐문수사에 나서고도 범인을 잡지 못했지만 인터넷에 글이 올라오자 20여 시간 만에 화분을 훔친 여성이 자수했다.
파출소 3~4개를 묶어 2003년 도입한 지구대의 상반된 모습이다. 안전 귀가, 미혼모 가정 순찰 등 생활밀착 활동으로 주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감동 치안’도 시행하지만 범죄현장에 ‘늑장 출동’했다가 비판 받는 경우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구대 중심으로 2003년부터 개편한 지역경찰제는 2009년부터 다시 파출소 중심으로 돌아섰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으로 전국 지역경찰 4만313명은 △파출소 1517곳(49.6%) △치안센터 1114곳(36.4%) △지구대 428곳(14%)에서 근무하고 있다.
조선시대 경수소(警守所), 일제강점기 주재소(駐在所)를 거쳐 파출소·지구대로 변신해온 지역경찰제 실태를 지구대 도입 9주년을 맞아 점검해 봤다.
◆지역 경찰…몸 낮춘 ‘감동 치안’ 호응
지구대를 필두로 ‘풀뿌리 치안’의 핵인 지역경찰은 지역주민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데 주력해왔다. 나름대로 변신을 꾀해온 지역경찰은 ‘주민 감동 치안’을 목표로 세웠다. 치안의 전초기지인 지역경찰의 활동이 경찰 전체의 이미지와 직결된다는 판단에서다.
용강지구대의 안심귀가도우미 서비스 외에도 전국 지구대와 파출소에선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영등포경찰서 중앙지구대는 이달부터 주민간담회를 열고 있다. 주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는 취지에서다. 지난 11일에는 당산동1가 청과물시장 인근에서 무단횡단 보행자 및 헬멧 미착용 오토바이 운전자 단속에 대한 주민 민원을 다뤘다. 올 들어 무단횡단으로 주민 6명이 사망하자 지구대가 주민의 안전을 위해 단속을 강화한 것이다.
하지만 간담회장에 나온 주민들은 예상 밖 의견을 내놨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직 노인들에게 무단횡단을 이유로, 시간이 돈인 청과물시장 배달부들에게 헬멧을 안 쓰고 오토바이를 몰았다는 이유로 각각 과태료나 범칙스티커를 부과하면 ‘하루 공친다’는 하소연이었다.
김장욱 중앙지구대장은 “무단횡단으로 사망자가 늘어나 단속을 강화했는데 정작 주민들은 ‘단속 때문에 못 살겠다’며 완화를 요구해 고민 중”이라며 “주민들의 안전도 챙기고 생계에도 지장을 주지 않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데 쉽지만은 않다”고 털어놨다.
마포경찰서 홍익지구대는 미혼모 공동생활가정 주변 순찰을 자청했다. 홍익지구대는 여성들만 거주하는 공동생활가정이 자칫 성범죄자, 절도범들의 목표물이 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상시 순찰을 시작했다. 지구대가 민생을 파고든 주요 사례다.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매주 토요일 ‘무료 태권도교실’을 운영하는 동대문경찰서 용신지구대도 선진 치안서비스를 적용한 우수 사례로 꼽힌다.
충남 연기경찰서 도원지구대는 지난 5월부터 관내의 독거노인 가정을 방문하고 학생과 연계해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현장출동 늦고 몸사리는 ‘물렁 경찰’ 비판도
지역경찰이 호평만 받는 것은 아니다. ‘신고 후 늑장대응’, ‘매맞는 경찰’도 지구대의 또 다른 모습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종로·홍대·서울역 일대 지구대·파출소는 코앞에서 취객들이 난동을 부려도 적극적으로 제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경기 고양경찰서 원당지구대는 2010년 유치원생을 넘어뜨려 다치게 한 여중생 사건을 두고 ‘늑장대응’해 경찰청 감찰을 받았다. 가해자인 중학생 A양은 당시 고양시 주교동 한 상가 건물에서 학원에 가던 B군(6)의 다리를 걷어차 계단에 넘어지게 해 앞니 2개를 부러뜨렸다. B군의 아버지는 사건 당일 고양경찰서 원당지구대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A양의 인적사항을 확인했는데도 소재 파악을 소홀히 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112에 사건이 신고된 후 5분 이내 현장에 출동하는 비율도 떨어지고 있다. 지구대 개편 전인 2002년 94.1%에 달했던 5분 이내 현장출동률은 지구대 도입 이후인 2003년 85%, 2004년 80.1%로 감소했다.
이에 대해 대다수 지역경찰들은 인력난으로 인한 현실적인 한계를 고려해 달라고 호소한다. 112 신고 건수는 폭증하는데 인력은 정체돼 민생 치안을 촘촘하게 돌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영등포경찰서에 따르면 사건·사고 다발지역인 중앙·신길지구대에 지난 1일부터 19일까지 들어온 112 신고건수는 각각 1148건, 623건이다. 하루에 들어오는 신고만 각각 60건, 33건이다. 이 일대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C경사는 “최소 12명이 필요하지만 지구대장·팀장, 외부 교육을 나간 팀원 등을 빼면 실제로는 10명이 될까 말까 한 인력만 제공돼 순찰차 1대가 놀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기본업무 중 하나인 범죄첩보 수집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생기는 폐해도 적지 않다. 강원도 삼척경찰서 도계지구대는 최근 도계읍을 휩쓴 ‘고리사채왕’ 김모씨가 일대 상인 250여명을 상대로 불법 고리사채를 일삼다 적발됐는데도 기본적으로 실태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본지 7월14일자 A20면 참조
지역경찰은 업무 외적인 각종 민원처리 요구에도 시달린다. 기본업무는 순찰·거점근무, 불심검문을 비롯한 범죄예방 활동이지만 야간에 가동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권력’이라는 이유에서다. 영등포 일대 지구대의 D팀장은 “일선 경찰서도 일부 담당하고 있지만 야간 치안의 99%는 1차적으로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전담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청 관계자도 “심야교습 학원 단속은 지방자치단체의 업무인데 시민들은 일단 지구대부터 찾아온다”며 “인력 충원은 물론 구청 등 관공서가 할 일과 경찰이 할 일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주/이지훈 기자 saki@hankyung.com
용강지구대 김정현 경사는 “혼자 사는 대학생이나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며 “늦은 밤 혼자 귀가하는 여성들을 노린 성범죄가 빈번해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2. 지난 18일 인터넷 한 포털 게시판에 ‘공개수배합니다. 용인 화분녀 좀 잡아주세요’라는 글과 함께 2분14초 분량의 폐쇄회로(CC)TV 영상이 올라왔다. “CCTV 자료를 경찰지구대로 보냈는데 경찰 측이 찾기 어렵다는 말을 해서 이렇게 인터넷에 올렸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신고를 받은 지구대는 한 달 동안 탐문수사에 나서고도 범인을 잡지 못했지만 인터넷에 글이 올라오자 20여 시간 만에 화분을 훔친 여성이 자수했다.
파출소 3~4개를 묶어 2003년 도입한 지구대의 상반된 모습이다. 안전 귀가, 미혼모 가정 순찰 등 생활밀착 활동으로 주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감동 치안’도 시행하지만 범죄현장에 ‘늑장 출동’했다가 비판 받는 경우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구대 중심으로 2003년부터 개편한 지역경찰제는 2009년부터 다시 파출소 중심으로 돌아섰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으로 전국 지역경찰 4만313명은 △파출소 1517곳(49.6%) △치안센터 1114곳(36.4%) △지구대 428곳(14%)에서 근무하고 있다.
조선시대 경수소(警守所), 일제강점기 주재소(駐在所)를 거쳐 파출소·지구대로 변신해온 지역경찰제 실태를 지구대 도입 9주년을 맞아 점검해 봤다.
◆지역 경찰…몸 낮춘 ‘감동 치안’ 호응
지구대를 필두로 ‘풀뿌리 치안’의 핵인 지역경찰은 지역주민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데 주력해왔다. 나름대로 변신을 꾀해온 지역경찰은 ‘주민 감동 치안’을 목표로 세웠다. 치안의 전초기지인 지역경찰의 활동이 경찰 전체의 이미지와 직결된다는 판단에서다.
용강지구대의 안심귀가도우미 서비스 외에도 전국 지구대와 파출소에선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영등포경찰서 중앙지구대는 이달부터 주민간담회를 열고 있다. 주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는 취지에서다. 지난 11일에는 당산동1가 청과물시장 인근에서 무단횡단 보행자 및 헬멧 미착용 오토바이 운전자 단속에 대한 주민 민원을 다뤘다. 올 들어 무단횡단으로 주민 6명이 사망하자 지구대가 주민의 안전을 위해 단속을 강화한 것이다.
하지만 간담회장에 나온 주민들은 예상 밖 의견을 내놨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직 노인들에게 무단횡단을 이유로, 시간이 돈인 청과물시장 배달부들에게 헬멧을 안 쓰고 오토바이를 몰았다는 이유로 각각 과태료나 범칙스티커를 부과하면 ‘하루 공친다’는 하소연이었다.
김장욱 중앙지구대장은 “무단횡단으로 사망자가 늘어나 단속을 강화했는데 정작 주민들은 ‘단속 때문에 못 살겠다’며 완화를 요구해 고민 중”이라며 “주민들의 안전도 챙기고 생계에도 지장을 주지 않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데 쉽지만은 않다”고 털어놨다.
마포경찰서 홍익지구대는 미혼모 공동생활가정 주변 순찰을 자청했다. 홍익지구대는 여성들만 거주하는 공동생활가정이 자칫 성범죄자, 절도범들의 목표물이 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상시 순찰을 시작했다. 지구대가 민생을 파고든 주요 사례다.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매주 토요일 ‘무료 태권도교실’을 운영하는 동대문경찰서 용신지구대도 선진 치안서비스를 적용한 우수 사례로 꼽힌다.
충남 연기경찰서 도원지구대는 지난 5월부터 관내의 독거노인 가정을 방문하고 학생과 연계해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현장출동 늦고 몸사리는 ‘물렁 경찰’ 비판도
지역경찰이 호평만 받는 것은 아니다. ‘신고 후 늑장대응’, ‘매맞는 경찰’도 지구대의 또 다른 모습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종로·홍대·서울역 일대 지구대·파출소는 코앞에서 취객들이 난동을 부려도 적극적으로 제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경기 고양경찰서 원당지구대는 2010년 유치원생을 넘어뜨려 다치게 한 여중생 사건을 두고 ‘늑장대응’해 경찰청 감찰을 받았다. 가해자인 중학생 A양은 당시 고양시 주교동 한 상가 건물에서 학원에 가던 B군(6)의 다리를 걷어차 계단에 넘어지게 해 앞니 2개를 부러뜨렸다. B군의 아버지는 사건 당일 고양경찰서 원당지구대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A양의 인적사항을 확인했는데도 소재 파악을 소홀히 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112에 사건이 신고된 후 5분 이내 현장에 출동하는 비율도 떨어지고 있다. 지구대 개편 전인 2002년 94.1%에 달했던 5분 이내 현장출동률은 지구대 도입 이후인 2003년 85%, 2004년 80.1%로 감소했다.
이에 대해 대다수 지역경찰들은 인력난으로 인한 현실적인 한계를 고려해 달라고 호소한다. 112 신고 건수는 폭증하는데 인력은 정체돼 민생 치안을 촘촘하게 돌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영등포경찰서에 따르면 사건·사고 다발지역인 중앙·신길지구대에 지난 1일부터 19일까지 들어온 112 신고건수는 각각 1148건, 623건이다. 하루에 들어오는 신고만 각각 60건, 33건이다. 이 일대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C경사는 “최소 12명이 필요하지만 지구대장·팀장, 외부 교육을 나간 팀원 등을 빼면 실제로는 10명이 될까 말까 한 인력만 제공돼 순찰차 1대가 놀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기본업무 중 하나인 범죄첩보 수집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생기는 폐해도 적지 않다. 강원도 삼척경찰서 도계지구대는 최근 도계읍을 휩쓴 ‘고리사채왕’ 김모씨가 일대 상인 250여명을 상대로 불법 고리사채를 일삼다 적발됐는데도 기본적으로 실태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본지 7월14일자 A20면 참조
지역경찰은 업무 외적인 각종 민원처리 요구에도 시달린다. 기본업무는 순찰·거점근무, 불심검문을 비롯한 범죄예방 활동이지만 야간에 가동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권력’이라는 이유에서다. 영등포 일대 지구대의 D팀장은 “일선 경찰서도 일부 담당하고 있지만 야간 치안의 99%는 1차적으로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전담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청 관계자도 “심야교습 학원 단속은 지방자치단체의 업무인데 시민들은 일단 지구대부터 찾아온다”며 “인력 충원은 물론 구청 등 관공서가 할 일과 경찰이 할 일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주/이지훈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