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과 배신의 세계 '담합'] '몸통'은 면죄부…'깃털'은 뒤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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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언시의 변질
“이미 늦었다고? 일단 팩스부터 밀어넣어.”
지난해 9월 이른바 ‘빅3’로 불리는 대형 생명보험사 중 한 곳의 기획담당 임원은 경쟁사 직원이 서울 반포동 공정거래위원회로 담합 자료를 들고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부하 직원에게 부리나케 지시했다. 리니언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 두 번째로는 담합 사실을 털어놔야 한다. 복수의 경쟁사들이 이미 공정위 현관 앞에 도착했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에 담합을 인정하는 자료를 팩스로 보내라고 지시한 것이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공정위는 국내 12개 보험사가 2001년부터 6년간 보험상품 적립금 이율을 담합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모두 365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문제는 생보사 ‘빅3’인 삼성, 교보, 대한생명이 리니언시를 적용받아 1순위 회사는 전액, 2순위 회사는 70%의 과징금을 면제받은 것. 2순위 회사는 기본 50%에 적극적으로 조사에 협조한 점을 인정받아 추가로 20%를 ‘할인’받았다. 나머지 한 곳은 3순위로 밀렸지만 절반을 깎을 수 있었다. 역시 공정위 조사에 순순히 응한 대가였다. 이렇게 해서 ‘빅3’가 면제받은 과징금은 전체의 3분의 2가 훨씬 넘는다.
반면 과징금 감면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 나머지 중소형 보험사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A사 관계자는 “우리는 공정위가 현장조사를 나오기 전까지 대형사들이 자료를 통째로 공정위에 넘겼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B사 관계자도 “시장 점유율이 높은 대형사들이 모여 이율을 올리면 그 자체가 ‘벤치마크’가 된다”며 “뒤늦게 이율을 올렸다가 담합에 가담한 것으로 찍혀 억울하다”고 말했다.
이들 중소형 생보사는 올해 초 과징금을 모두 납부한 뒤 공정위를 상대로 각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전문가들은 “담합의 몸통은 빠져 나가고 깃털만 걸려드는 현행 리니언시 제도는 문제가 있다”며 “자백에만 의존하는 공정위의 조사 기법이 갖고 있는 한계”라고 말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지난해 9월 이른바 ‘빅3’로 불리는 대형 생명보험사 중 한 곳의 기획담당 임원은 경쟁사 직원이 서울 반포동 공정거래위원회로 담합 자료를 들고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부하 직원에게 부리나케 지시했다. 리니언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 두 번째로는 담합 사실을 털어놔야 한다. 복수의 경쟁사들이 이미 공정위 현관 앞에 도착했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에 담합을 인정하는 자료를 팩스로 보내라고 지시한 것이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공정위는 국내 12개 보험사가 2001년부터 6년간 보험상품 적립금 이율을 담합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모두 365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문제는 생보사 ‘빅3’인 삼성, 교보, 대한생명이 리니언시를 적용받아 1순위 회사는 전액, 2순위 회사는 70%의 과징금을 면제받은 것. 2순위 회사는 기본 50%에 적극적으로 조사에 협조한 점을 인정받아 추가로 20%를 ‘할인’받았다. 나머지 한 곳은 3순위로 밀렸지만 절반을 깎을 수 있었다. 역시 공정위 조사에 순순히 응한 대가였다. 이렇게 해서 ‘빅3’가 면제받은 과징금은 전체의 3분의 2가 훨씬 넘는다.
반면 과징금 감면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 나머지 중소형 보험사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A사 관계자는 “우리는 공정위가 현장조사를 나오기 전까지 대형사들이 자료를 통째로 공정위에 넘겼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B사 관계자도 “시장 점유율이 높은 대형사들이 모여 이율을 올리면 그 자체가 ‘벤치마크’가 된다”며 “뒤늦게 이율을 올렸다가 담합에 가담한 것으로 찍혀 억울하다”고 말했다.
이들 중소형 생보사는 올해 초 과징금을 모두 납부한 뒤 공정위를 상대로 각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전문가들은 “담합의 몸통은 빠져 나가고 깃털만 걸려드는 현행 리니언시 제도는 문제가 있다”며 “자백에만 의존하는 공정위의 조사 기법이 갖고 있는 한계”라고 말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