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안전위원회가 고리 1호기에 대해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렸음에도 주민들이 추천하는 민간 전문가들이 이를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고 한다. 정부는 검토 차원이라고 하지만 주민들은 사실상의 재검증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정부 스스로 원자력 최고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의 권능을 부정하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사태의 전개다.

그동안 일부 주민과 반핵단체는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물론이고 원자력안전위의 안전점검 결론조차 믿을 수 없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오로지 자신들이 추천하는 민간 전문가들에 의한 안전점검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요구였다, 정부는 소통 차원에서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지만 결국 굴복한 꼴이 되고 말았다. 앞으로가 정말 걱정이다. 반핵단체들의 목표가 고리 1호기의 즉각적인 가동 중단, 즉 원자로 폐쇄에 있다는 건 이미 삼척동자도 다 안다. 주민들이 추천하는 소위 민간 전문가들이 원자력안전위의 결론을 문제삼고 나설 경우 그때는 어찌할 것인가.

물론 우리는 안전점검 과정에서 민간 전문가들의 참여를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 권장할 일이다, 원자력안전위도 고리 1호기에 대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안전점검과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민간특별위원회의 점검을 병행한 바 있다. 주민들이 추천하는 민간 전문가들의 참여도 그 과정에서 이뤄졌다면 전혀 문제될 것도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법적으로, 행정적으로 이미 결론이 다 난 것을 민간 전문가들에게, 그것도 주민들이 추천하는 민간전문가들에게 다시 검토를 받겠다고 하는 건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소리다. 행정부의 권한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고, 원자력 규제 정책의 결정권을 주민들과 반핵단체에 갖다 바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정부가 실로 무모한 도박을 감행하고 있다.

원자력안전위는 태스크포스에 안전점검 자료를 다 넘겨주겠다고 했다는데 도대체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 기구인지조차 모르는 것 같다. 원자력안전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갖다 놓은 건 특정 부처와 원전사업자뿐 아니라 반핵단체들로부터도 휘둘리지 말라는 뜻이다. 독립성은 원자력안전위의 기본이다. 부디 중심부터 잡아라.